'풍수지리(風水地理)'만큼 우리 생활속에서 재미있게 오르내리는 화제도 별로 없을성 싶다. 근거 없다고 치부하면서도 풍수얘기를 즐긴다. 국가나 개인의 길흉사(吉兇事)를 말할 때조차도 으레 풍수를 들먹인다. 지난 여름 사상 최악의 태풍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피해가 비교적 경미했던 것으로 나타나자 옛 건축물들이 풍수지리를 따져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서울의 R호텔은 한동안 행운을 가져오는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수능을 앞둔 학생들과 국가고시 응시자들의 예약으로 몸살을 치르기도 했다. C은행의 행장이 자신의 사무실은 물론 전국 지점을 순방하면서 책상위치를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풍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대권물망에 오른 후보들의 생가와 선산을 답사해 그 판세를 점치는가 하면,후보가 이사만 해도 그 집은 풍수와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넘겨 짚는다. 각 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은 청와대 집무실도 옮기겠다고 말한다. 청와대 자리가 기(氣)가 세서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을 겪었다는 그럴 듯한 소문이 나도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청와대 이전이 거론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며칠전에는 대검찰청이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며 청사정문쪽의 주차장 출입구를 폐쇄해 버렸다. 한 풍수지리학자가 대검청사를 둘러본 뒤 기가 새어 나가니 이를 막아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검찰간부들의 연이은 낙마가 '터'때문이라는 속설을 과학수사를 표방하는 검찰이 받아들인 셈이다. '풍수'는 주거환경도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고양의 한 아파트는 이곳이 음기가 강한 곳이라 해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도록 수호목을 심고 생명과 양기를 상징하는 삼신산(三神山) 등을 설치하기도 했다. 강남의 중개업소들은 풍수지리 상담사를 채용해 고객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신봉해 온 탓일까.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풍수는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