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 맺힌 물방울 하나에는 우주가 담겨 있다.이 작고도 큰 호수는 허무와 충만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완벽한 겸허와 무한한 가능성이 동시에 교차하는 것이다. 김창열(73) 화백은 동양적 순환원리가 숨어 있는 물방울을 지난 30년 동안 줄기차게 그려왔다. 한 가지 소재에 이토록 오래 매달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 원형 액체를 캔버스에 재현시키며 우주적 공(空)과 허(虛)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너무 흔해서 무심코 지나치곤 하는 물방울에 삼라만상의 이치가 투영돼 있다고그는 믿는다. 오는 29일부터 9월 11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열리는 '김창열전'은그의 예술세계를 조망해볼 수 있는 자리다. 출품작은 '회귀' 시리즈 대작 20여점.평생을 바쳐 모색해온 주제이지만 이번 전시작에서 전에 없던 변화를 꾀하고 있어눈길이 간다. 출품작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마포 위에 영롱한 물방울만 남기는 작업이 그 하나라면, 물방울과 천자문이 이중주로 어우러지는 '회귀' 시리즈가 그 둘이다. 새로 시도하는 작업은 캔버스 바닥을 오일로 두텁게 바른 뒤 물방울을 하나하나 올려간다. 다시 말해 물방울 작업의 흐름을 시기별로 일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아무래도 올해 제작한 신작 두 편이라고 해야 할것같다. 바탕을 오일로 깐 다음 수증기 입자처럼 잔 물방울을 상큼하게 올려놨다.한 작품이 어두운 바탕색으로 화면의 깊이를 추구한다면 다른 작품은 연노랑색이 가볍게 깔려 화사함을 더한다. 김 화백이 맨처음 물방울을 소재로 택한 것은 1972년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살롱 드 메에 최초로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훗날 천자문과 물방울을 조화시키는 '회귀'시리즈를 제작하며 '물방울 화가'로 이미지를 확고히했다. 초기에는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붓자국없이 정교하게 그렸으나 80년대에 들어서는 거친 붓자국을 남기는 신표현주의로 나아갔다. 멀리 볼수록 물방울이 살아 돋아나는 것은 이때문이다. 그는 이번이 74번째 개인전일 만큼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왔다. 그동안 파리 비엔날레와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 세계 유수의 미술전람회에 참가했으며 파리의 앙리코 나바라 갤러리, 미국 뉴욕의 스템플리 화랑, 독일의 스프릭 화랑 등에도 작품을내걸었다. 특히 2004년 1월부터 두 달간 파리 죄드폼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기로일정이 잡혀 있어 요즘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미술관에서 한국인이 공식 개인전을 갖는 것은 1997년 이우환씨에 이어 두번째.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죄드폼 미술관 건물은 나폴레옹 3세대 때 테니스 코트용으로 지어졌다가 20세기 들어 미술관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한때 인상파 화가의미술관으로 유명했으나 1986년 이들 작품이 오르세미술관으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 544-8481~2.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