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맨날 공부하라고 그러시면 공대 갈 거예요." 요즈음 입시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유행어다. 올해 초 한국산업기술진흥협의회가 1천개 민간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연구원 중 '다시 직업을 선택할 경우 연구원의 길을 걷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15.4%에 불과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대학 진학을 위해 치러지는 수학능력시험에 고등학생의 자연계 지원율은 1997년 43.2%에서 2002년 26.9%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자연계 지원학생들 중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은 취업전망이 좋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의대로 진학하고 있다. 그동안 우수 학생들이 몰려들어 인기를 구가했던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도 2002년 합격자 등록률이 각각 81.7%와 81.9%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학생 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이공계 기피·이탈 현상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2002년 서울대 박사과정 모집정원 77명에 50명만 지원해 미달사태를 빚었으며,한국과학기술원의 석사 취득 후 박사과정 진학률은 98년 76.4%에서 2001년엔 64.9%로 내려갔다. 이렇듯 이공계열의 지원자가 감소하게 되면 차후 대학에서의 이공계 교육 부실화는 물론 사회에 배출되는 인력의 질이 크게 저하돼 과학기술 및 산업발전의 기반이 허약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공계 학생들의 장래를 보여주는 잣대로서 이공계 전공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자.우선 정치 분야에서 16대 국회의원 중 8%가 이공계 출신이며,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 중 불과 11%만이 이공계 출신이고,장·차관급 고위 공직자 중에서는 24%가 이공계 출신이다. 정책결정을 담당하는 정부의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중 단 16%만이 이공계이며,상장회사 대표이사 중 26%가 이공계일 뿐이다. 입시생들이 수학 과학과목은 공부하기 어렵다고 기피하고,수능 점수를 높이기 위해 인문·사회계열 과목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자연계 선택과목에서도 물리보다는 지구과학 등 점수 따기 쉬운 과목으로 몰리는 현상이 해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렵게 공부한 만큼의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노력으로 갈 수 있는 의대계열 졸업자와 경제적 부 및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너무 커 상대적으로 심한 박탈감을 느낄 정도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잡지인 사이언스지는 60∼70년대 한국의 과학기술인 우대정책과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가 80∼9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면서 '21세기 초 한국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10년 후 한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분야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공계 종사자들이 그들의 기술과 연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연구개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기술자의 처우 및 연구환경 개선의 제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있을 때 많은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와 더불어 이공계지원자의 사기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 및 각 기관의 정책방향은 다음과 같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과학기술인의 사회 경제 정치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는 기술고시제도의 개편과 기술고시 합격자의 중용,기업에서의 과학기술계 임원 비율의 확대 장려,R&D 인력의 처우 개선,R&D 투자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기초산업기술연구를 담당하는 과학자 양성이 필요하다. IT(정보기술) 등 21세기형 과학기술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원천적 기초기술연구를 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 꾸준히 양성돼야 한다. 끝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위시한 연구소 분위기를 활성화하는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소는 이공계 출신들이 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며,각자의 잠재력과 능력을 발휘해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groh@etri.re.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