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들소'라고도 불리는 버펄로는 몸집이 아주 크다. 다 자란 수컷은 몸무게가 1t이 넘는다. 인디언들의 좋은 사냥감이었다. 어깨 높이만 2t나 되는 버펄로를 인디언들은 무기도 쓰지 않고 한번에 수십마리씩 잡을 수 있었다.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버펄로는 눈이 얼굴의 양쪽 옆에 달려 있다. 옆은 괜찮지만 앞은 잘 못 본다. 적의 위협에 놀랐을 때는 무리를 지어 도망가는데 앞서가는 무리의 뒤꽁무니만 보고 따라 달린다. 인디언들은 이런 약점을 이용했다. 말을 탄 채 함성을 지르며 채찍과 창으로 무리의 선두를 절벽으로 내몰기만 하면 모든 것은 자연히 이뤄졌다. '리더 버펄로'가 벼랑끝에 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뒤따르던 추종자들에 밀려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나머지 무리도 같은 방식으로 죽어갔다. 버펄로는 코앞만 보고 다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부지런히' 달려가다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버펄로 무리의 비극은 사람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한껏 달아오른 주식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깡통'을 찬 사람의 대부분은 대박을 터뜨렸다는 '옆사람'이 부러웠던 이들이다. 체인점 분양 사기가 가능한 것도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판단을 더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규모가 제법 있는 회사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지금은 업체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시티폰(발신전용 휴대전화) 사업에 '사운'을 걸고 경쟁을 벌였던 기업들은 나름대로 내로라하는 대기업 혹은 전문기업들이었다. 경쟁사가 하는 일에 무조건 따라붙어야 하고 특히 업계 선두사가 진출하는 분야엔 일단 '숟가락을 놓고 보는' 행태가 여전하다. 버펄로 무리와 다를 것이 뭐 있는가. 삼성 LG 현대가 사람을 줄이면 중소기업까지 다 사람을 줄인다. 중견 중소기업이라면 그런 대기업에서 밀려나오는 인재들을 '싼 값'에 쓸 수 있는 '기회'에 더 집중하는 게 낫다. 선도업체가 값을 내리면 나머지 회사들도 모두 같이 내린다. 가격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소비자들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회사는 적다. 물론 이런 행태를 탓할 수만은 없을 정도로 경영환경은 열악하다. 정부의 참견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요,일단 남들을 따라 하면 큰 손해는 없다는 '경험칙'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비극이 오면 모두 함께 당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비극을 막는 길은 멀리 보는 것 뿐이다. 한발짝 먼 곳에서 전체와 미래를 조망하는 방법 말이다. 버펄로 무리의 위대한 리더는 언덕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디언들이 가까이 오면 절벽 쪽으로가 아니라 언덕 아래로 무리를 이끌고 도망쳤다. 인디언추장 가운데 '언덕 위의 소'나 '앉아있는 버펄로' 등의 이름이 적지 않았던 것은 길고 먼 안목을 갖고 무리를 이끌었던 '진정한 리더'버펄로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웠기 때문이리라. 우리 기업이 멀리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수십년짜리 장기계획을 내놓는 회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잘 말해준다. LG가 지난 96년 10년 장기플랜인 '도약 2005'를 내놓았을 때,재계 한켠엔 냉소주의가 분명 있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경영현실에서 10년뒤 얘기는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계획의 효용은 실현 가능성이 아니다. 그보다는 목표지에 가서 길을 다시 묻더라도 우선 참조해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지도와 같은 가치가 있다. 일본 기업 마쓰시타는 1932년 25년짜리 실행계획 10개로 이뤄진 2백50년짜리 비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멀리 있는 기회와 위험요인에 대해 홀로 고독하게 고민하는 리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비극을 막는 것은 주로 그런 선구자들이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