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업기술정책이 겉돌고 있다. 정부가 기술개발의 핵심축으로 육성중인 5대 신기술(5T) 가운데 정보기술(IT) 분야를 제외하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7~8년)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생명기술(BT)과 환경기술(ET) 분야는 기술개발 투자가 본격화된 1999년에 비해 기술격차가 오히려 1~2년 더 벌어지는 추세다. 에너지 세라믹 항공우주 등 첨단 기술을 앞세워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응책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 신기술 격차가 더 크다 산업기술평가원에 따르면 고부가가치 신산업인 5T 분야의 평균 기술수준은 선진국의 66%선으로 사실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컴퓨터시스템(81.8%) 통신(80.9%) 전자부품.반도체(71.0%) 소프트웨어.게임(68.0%) 등 IT(73.9%) 분야만 격차가 좁혀졌을 뿐 BT(66.1%) ET(64.0%) 항공우주기술(ST·60.8%) 등은 선진국과 8∼10년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특히 생명공학과 환경설비의 기술수준은 1999년보다 각각 3.0%포인트, 3.6%포인트 후퇴했고 세라믹재료는 7.7%포인트나 곤두박질쳤다. 첨단 산업의 인프라 기술로 부상중인 초미세기술(NT) 분야는 26.0%로 아예 불모지나 다름없는 형편이다. 반면 수송기계 금속재료 섬유 등의 기술수준은 선진국의 75% 정도로 전통 주력산업의 기술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세계 1위의 선박 수주국으로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특수선박 설계능력이 향상된 조선 분야는 2년전보다 기술수준이 무려 7.8%포인트 높아졌다. 자동차는 IT와의 접목과 엔진제어기술 개발에 힘입어 4.8%포인트 상승했고 2차전지 개발이 활발한 전지 분야도 4.9%포인트 개선됐다. ◆ 핵심.원천 기술이 없다 기술 경쟁력의 현주소는 연구개발(R&D) 투자대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산자부에 따르면 한국의 기초기술 R&D에 대한 투자비중(2000년 기준)은 전체 R&D 금액의 13.6%로 프랑스(22.2%) 독일(21.2%) 등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다. 반면 응용기술 투자비중은 25.7%로 미국(22.6%) 일본(24.6%) 등 선진국을 능가한다. 대부분의 핵심 기술을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한국의 첨단기술 해외의존도는 94년 11.5%에서 97년엔 19.0%로 급상승했다. 미국의 기술 해외의존도가 3.2%에 불과하고 일본과 독일도 각각 6.4%선인 것과 대조적이다. ◆ 투자와 인력이 빈약하다 올 한국의 R&D 예산은 미국(1천36억9천4백만달러)의 3.9%인 40억2천3백만달러(5조1천5백83억원)로 '규모의 경쟁'이 안된다. 일본(2백91억5천9백만달러)과 영국(1백8억7백만달러)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다. 특히 일본과 영국은 5T 분야에 R&D 예산의 15.1%, 22.0%를 각각 반영, 첨단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욱이 이공계 진학 기피 현상 등으로 연구인력 공동화 문제가 갈수록 심화돼 향후 산업인력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우려된다. 대입 수험생의 이공계 응시비율이 96년 43%에서 올해 27%로 낮아진 데다 공대생의 대학원 진학률도 20% 미만으로 일본(24%)과 미국(43%)에 크게 뒤지고 있다. 민.관 연구소의 R&D 인력 가운데 66%가 이직을 고려중이고 핵심 연구원들이 앞다퉈 해외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005년까지 핵심 기술인력 부족규모가 △IT 13만명 △BT 6천4백명 △NT 1천7백85명 등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 대책은 없나 기존의 기술개발정책을 재검토하고 R&D 예산 배정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기평은 업종별로 예산을 단순 배분하는 방식에서 탈피, 세부 기술 분야별로 개발전략을 다시 짠 뒤 될성 싶은 분야에 집중 투입할 것을 제안했다. 안정적인 인력공급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공계 진학생과 R&D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등 기술인력에 대한 '당근'을 크게 늘리고 산.학 협동 연구를 대폭 확대, 연구자들이 기술개발의 과실을 나눠 갖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