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은행권 2차 합병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제일은행과의 합병협상은 "살짝만 건드려도 발표할 수 있을 정도"(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까지 진전된 상태다. 이 마당에 서울은행 인수전에까지 뛰어들겠다고 나섰다.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로선 3개 은행을 하나로 묶어 총자산 1백조원이 넘는 초대형 은행으로 변신하겠다는 포석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구도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은행권은 국민은행과 한빛은행의 양강구도에서 하나+제일+서울, 신한+한미까지 가세한 4강 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끝없는 '덩치키우기' 경쟁에 들어가야할 운명 앞에 서게 됐다. ◆ 서울은행 인수 가능성 하나은행이 서울은행 매각입찰에 참여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동안 합병대상으로 거론된 곳은 제일은행이었고 합병 발표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하나은행이 돌연 서울은행 인수의사를 분명히 했다. 우량은행이 나타나 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정부 관계자들은 얼굴이 활짝 피었다. 서울은행 입찰에서 하나은행의 낙찰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낙찰자를 선정할 때 어떤 식으로든 우량은행에 가산점을 줄 것"이라며 "다른 후보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쓰지만 않는다면 하나은행이 낙찰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는 서울은행 처리의 우선순위를 '우량은행과 합병' '국내외 투자자에게 매각' '공적자금투입 은행과 합병' 순으로 정리한 바 있다. 현재 서울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은 산업자본 2군데(동원그룹, 동부컨소시엄),해외 투자기관 2군데(유럽계 HPI, 미국계 투자회사), 정부지분이 있는 은행 2군데(조흥.외환은행) 등이다. 정부가 정한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선 곳은 하나은행이다. ◆ 인수의향을 밝힌 이유 아직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제일은행과의 합병협상을 포기하고 서울은행을 합병 파트너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제일은행에 이어 서울은행까지 인수하려는 것인지가 관심이다. 제일은행과의 합병협상을 보다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압박용 전술이 아닌지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금융당국과 금융계의 일반적 분석은 3자 합병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제일은행과의 합병논의가 큰 무리없이 진행돼 왔고 쟁점도 대부분 해소됐기 때문에 협상 결렬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 인수의향을 가장 먼저 알린 곳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금융당국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위장전술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3개 은행 합병을 통해 국민은행 한빛은행에 못지 않은 초대형은행으로 발전하려는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규모의 경제를 위해선 자산규모가 1백조원 이상은 돼야 한다. 제일은행이든 어디든 연내에 합병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시나리오를 뒷받침하고 있다. ◆ 3자합병이 이뤄지면 총 자산이 1백10조원이 넘어 1백90조원대인 국민은행에 이어 두번째로 큰 은행이 된다. 지난 3월말 현재 총자산은 하나은행 56조8천1백9억원, 서울은행 25조8천6백81억원이었다. 제일은행은 작년 말 현재 27조5천3백56억원이었다. 하나은행이 3개 은행 합병에 성공하면 자산규모 1백조원 이상인 은행이 국민, 하나,한빛 등 3개로 늘어나게 된다. 현재 합병협상을 진행 중인 신한은행과 한미은행이 이에 자극받아 전격 합병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은행권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공룡은행'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한편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는 서울은행 매각을 위한 주간사에 골드만삭스와 삼성증권 컨소시엄을 선정했으며 조만간 인수후보들에 투자제안서를 발송하기로 했다. 이후 일정은 △인수의향서 접수 △예비실사 △인수제안서 접수(입찰)의 순으로 진행된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