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진부한 명제를 신조삼는 문화코드가 패러디다. 그것은 기존작품에 과장과 풍자를 덧칠해 익살스럽게 재창조한다. 기존 작품을 알아야 웃음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 "재밌는 영화"(장규성 감독)는 한국영화 28편을 짜깁기해 코미디로 만든 국내 첫 본격 패러디영화다. 지난해 점유율 46.1%를 차지한 한국영화의 힘을 모태로 태어났다. "쉬리"의 골격위에 "친구""공동경비구역 JSA""엽기적인 그녀""주유소 습격사건""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반칙왕""접속""거짓말" "넘버3" "간첩 리철진" 등 흥행작들의 패러디 장면들로 살을 입힌 형태다. 임원희 김정은 김수로의 능청맞은 연기,그럴듯하게 짜맞춘 줄거리,화려한 화면,재치있는 비틀기 등으로 관객들에게 미소를 선물한다. 동시에 걸음마단계인 한국 패러디영화의 한계점도 드러낸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저지하려는 일본의 극우세력 천군파 일당이 한국에 잠입해 한국의 특수경찰KP와 대결하는 구도다. 임원희 김정은 서태화 김수로가 "쉬리"의 한석규,김윤진,송강호,최민식 캐릭터를 본땄다. 도입부는 천군파일당의 훈련받는 모습,천군파의 여전사 하나코가 성형수술로 상미로 바뀌는 장면이다. 영화속에서는 "네모꼴" 코미디언 박경림에게 전기톱을 들이대는 순간 깜찍한 김정은으로 변신한다. 상미(하나코)는 KP요원 황보(임원희)에게 접근하고 천군파의 무라카미(김수로) 일당은 액체폭탄을 밀반입한다. 이후 상미와 황보는 "엽기적인 그녀"의 지하철 패러디장면에서 만나 애정이 깊어진다. 무라카미 일당은 "간첩 리철진"에서처럼 공작금을 날치기 당한 뒤 자금마련을 위해 "주유소습격사건"처럼 주유소를 덮친다. KP요원이 천군파를 뒤쫓는 장면은 "친구"의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에 뛰는 모습으로 재현된다. 마침내 남북한 정상과 일본 천황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KP요원들과 무라카미일당간에 운명의 결전이 전개된다. 상미가 자신의 토사물을 다시 마시는 광경(엽기적인 그녀)과 KP요원들이 피살자 항문에 손을 넣어 맛을 보는 대목(투캅스) 등은 "엽기"코드의 패러디다. 일본경찰과 상미가 뭉동이를 동원한 새도마조히즘적 관계를 갖는 장면(거짓말)은 "섹스코드"의 패러디다. 이처럼 여러 요소의 패러디들이 무차별 "웃음탄환"을 쏘아댄다. 그러나 "쉬리"의 구도를 끝까지 가져감으로써 "반전의 묘미"를 주지 못했다. 패러디형식도 원작에 비해 배우와 장소만 약간 바꾼 수준에 머물렀다. 패러디 장면들이 원작과 다른 의미로 치환하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가령 동화를 패러디했던 애니매이션 "슈렉"의 마지막장면에서 마법에서 풀린 공주는 주인공 슈렉처럼 "뚱뚱하고 못난" 모습이지만 "해피엔드"를 기약하고 있다. 공주가 동화에서처럼 날씬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닮은 반려자를 선택하는 길이야 말로 이상적이라는 진리를 깨우쳐 줬다.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