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도심 거리에서 갓난아기들이 구걸에 동원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여성 노숙자들이 시민들의 동정심을 유발시켜 더 많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기를 빌려 생모인 것처럼 행세하며 동냥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족자카르타 등 대도시 교차로 주변에는 한살 전후의 갓난아기를 업은 여성들이 정차중인 차량에 접근해 돈을 요구하는 광경이 수시로 목격되고 있다. 구걸 여성들이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아기를 맡길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 길거리로 데리고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의 자식을 임대해 구걸에 이용하는 사례도 자주 눈에 띈다. 여성 노숙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경제난으로 ''길거리 경쟁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동냥수입이 크게 줄자 극빈층 주부들로부터 갓난아기를 빌리는 묘안을 찾은것이다. 자카르타 타만 미니 공원 인근 지역에서 구걸행위를 하는 인드리(21)씨의 경우 남의 아기를 빌려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녀는 "최근 1, 2년 사이에 수입이 크게 줄었으나 젖먹이 아기 엄마로 행세한 이후 수입이 예전 수준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아기를 업고 교통신호 변경을 대기중인 차량에 다가가면 운전자들이 거의 예외없이 100-200루피씩 건네준다는 것이다. 아기를 하루 8시간 정도 빌리는데 드는 `임대료''는 1만루피아(1달러) 수준이다.오전 8시-오후 4시까지 일하는 자카르타 성인 남성 청소부의 일당이 8천루피아인 점을 감안하면 적은 액수는 아니다. 극빈층 주부들은 남편의 실직 등으로 마땅한 돈벌이가 없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상황에서 하루 1만루피아의 수입을 제시받으면 대부분 ''자식 임대''에 선뜻 동의한다는게 구걸 여성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엄마품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갓난아기를 빌려주는 주부들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다. 생면부지의 여성에게 이끌려 차량에서 내뿜는 매연과 폭염 속에서 하루종일 고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카르타 곳곳에서는 충분한 양의 우유나 젖을 먹지 못한 상태에서 무더운 날씨에 탈진한 듯 구걸 여성들의 등에 업힌 채 하루종일 잠만 자는 아기들의 모습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수년 째 계속된 경제난이 회복되고 극도로 부패한 관료조직의 정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어른들의 생계를 위해 세상에 갓 태어난 인도네시아 아기들이 겪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숙자 지원 단체인 `후마나 기를리''의 키릭 에르탄토 사무국장은 28일 "정부재정상태가 극도로 열악한데다가 그나마 기존의 빈민퇴치 기금 대부분도 공무원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가 노숙자 지원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면서 강도높은 부패 척결을 촉구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대일특파원 hadi@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