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지나친 '미국 눈치보기'로 쿠바와의 수교가 무한정 지연되고 있다. 쿠바는 지난 주 뉴질랜드와 수교에 최종 합의, 현재 131개국이 쿠바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쿠바 수도 아바나에는 99개국이 상주공관을 두고 있다. 쿠바와 미수교국은 전세계에서 한국과 이스라엘,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등 4개국 뿐이다. 한국은 비동맹 정상회의가 열렸던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양국 수교의 전단계로무역대표부 설치 등에 관해 쿠바 당국으로부터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경제봉쇄를 강행하는 미국 정부의 눈치보기와 무역대표부 직원들의 지위 문제를 둘러싸고 시간을 끌다가 대표부 설치 시기를 놓쳤다. 당시 피델 카스트로 정권 수립이후 한국정부 고위관계자로서는 처음으로 쿠바정부의 공식초청을 회의에 참석했던 선준영 주유엔대사는 쿠바의 고위당국자를 만난뒤 "수교전망이 비관적이지 않다"며 "우선 수교 이전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아바나 사무소 설치문제를 쿠바 정부와 협의해 볼 수 있는 사안"이라며 조기수교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었다. 또 지난 4월초 아바나에서 열린 국제의회연맹(IPU) 연례총회에 참석했던 이만섭국회의장도 펠리페 페레스 로케 쿠바 외무장관과 면담한 뒤 "KOTRA 아바나 사무소설치에 관해 긍정적인 얘기를 들었다"며 "오히려 쿠바 쪽이 무역대표부 설치에 적극적인 인상을 받았으나 선(先)수교-후(後)무역대표부 설치에 초점을 맞춘 우리 정부의 방침으로 협상이 더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가 이처럼 올해초까지만 하더라도 무역대표부 설치에 긍정적인 반응을보였으나 최근들어 태도가 돌변했다. 최근 수교의사를 타진하러 쿠바를 방문했던 한국정부 관계자는 "쿠바 당국이 갑자기 무역대표부 설치문제에 난색을 표시했다"고 밝히고 "어떤 내부사정이 있는지는모르지만 일단 종전의 태도에서 크게 후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미국의 한 업체가 쿠바당국의 요청으로 허리케인 `미첼'의 피해가 극심한 쿠바에 1회에 한해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키로 한 것에 대해 서방언론들은 `경제봉쇄 해제의 전환점'으로까지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부분의국가들이 쿠바와 수교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지나친 `미국 눈치보기'로 잠재력이큰 시장을 놓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쿠바에는 현재 파나마와 캐나다 등을 통한 우회교역 형태이긴 하지만 한국의 대우전자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오래 전부터 진출, 각각 가전시장의 50% 이상과 승용차시장의 20% 가량을 점유하고 있으나 미수교국이라는 이유로 다른 외국인회사에 적지않은 커미션을 뜯기고 있으며, 그 이상의 통상확대도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美플로리다주립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논문을 통해 "미국의 경제봉쇄나헬름즈-버튼법은 쿠바에서 이미 활동중인 외국기업들의 사업확장을 저지하는데 무력했을 뿐 아니라 추가투자 역시 단념시키지 못했다"며 "오히려 쿠바내 기존 외국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라고 경제봉쇄의 실패를 지적했었다. 쿠바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은 지난 99년 3월말 현재 캐나다 6억달러, 멕시코 4억5천만달러, 이탈리아 3억8천700만달러, 스페인 1억달러 등으로 나타났으며, 주로전기통신사업(6억5천만달러)과 광산업(3억5천만달러), 관광산업(2억달러) 분야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특파원 bigp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