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상하이(上海) 푸둥(浦東) 금융가에 자리잡은 대형 할인점인 롄화(聯化)매장에 붉은색 현수막이 나붙었다. '축(祝) 1천점(店) 돌파'가 내용. 롄화차오스(聯華超市.롄화슈퍼마켓)의 전국 매장이 1천개 고지를 돌파했음을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당시 롄화차오스 본부에서 작은 경축행사가 열렸다. 상하이시정부 관계자 및 유통업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상하이위성TV는 참가자들에 둘러싸인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시킨다. 왕쭝난 롄화차오스그룹 회장(王宗南)이 그다. "이제 1천개를 넘어섰을 뿐이다. 우리는 화동지역을 벗어나 전국 소비자에게로 다가가려는 행군을 계속할 것이다. 5년 후 롄화차오스 매장을 6천개로 늘릴 계획이다. 올해 4백50개가 더 생긴다" 왕 회장은 TV인터뷰를 통해 "상하이 시민 누구든 10분 걸어 롄화차오스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매장을 촘촘히 박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 회장은 '중국 유통업계의 자존심'으로 불리기도 한다. 까르푸 월마트 등 해외 할인매장의 공세로부터 중국 소비유통 시장을 지켰다는 평가다. 롄화차오스는 지난해 1백11억4천만위안(1위안=약 1백55원)의 판매고를 올려 유통업계 최고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전년 대비 52.5% 늘어난 수치. 2위인 상하이화롄(上海華聯)보다는 거의 두배나 많다. 소비유통업계를 장악하려는 왕 회장의 야욕은 끝이 없다. 근거지인 상하이를 기반으로 전국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지린(吉林)에서 베이징(北京) 허베이(河北) 저장(浙江) 광둥(廣東) 등에 이르는 동부연안 유통라인을 구축했다. 최근에는 하이난(海南)항공 선전농산품 등 10개 물류 관련 업체와 제휴, 유통의 속도와 판매 제품 폭을 넓히기도 했다. 왕 회장의 행진은 중국에서 일고 있는 유통시장 지각변동을 대변하고 있다. 끝없이 확대되고 있는 소비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유통업체간 합종연횡(合縱連橫)이 빈번하다. 그런가하면 백화점과 편의점, 편의점과 할인매장 등 서로 다른 형태의 유통업체들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손을 잡고 있다. 홍콩 최대 중국자본 업체인 화룬(華潤)그룹 산하 소비유통 업체인 화룬차오지(華潤超級). 이 회사 장웨민 사장(蔣躍敏)은 지난 9월 중국 남부지역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을 뉴스를 발표한다. 선전에 본부를 둔 완지아(萬佳)백화점 주식 72%를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화룬과 완지아는 광둥성의 소비유통 분야의 양대 라이벌 업체. 당시 광둥의 언론들은 이를 두고 '적이 하루아침에 형제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장 사장이 완지아를 매입한 최종 목적은 광둥이 아닌 중국 북부와 화동지역이었다. 완지아가 중국 주요 도시에 갖고 있는 중형 매장을 탐냈던 것. 화룬은 이번 M&A(인수합병)로 중국 제23위 유통업체(2000년 판매액 기준)에서 일약 7위 업체로 뛰어올랐다. 홍콩 울타리에 머물러있던 그가 대륙 유통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것이다. 지난 2월 중국 유통업계의 지각을 흔든 또 다른 합종연횡이 있었다. 베이징의 유통강자인 시단상창(西單商場)과 베이징차오스파(北京超市髮), 제2위 유통업체인 상하이화롄 등 3개 업체가 손을 잡은 것. 이들은 3년 안으로 베이징에 5백개의 체인점을 설립키로 했다. 이 연합의 중심 인물인 왕시우링 시단상창 사장(王秀玲)은 "까르푸 월마트 등의 공략으로부터 베이징 시장을 지키려는 뜻"이라고 제휴 이유를 설명했다. 도매유통에도 변혁의 조짐이 일고 있다. 중국 최고(最古) 유통업체인 상하이바이(上海一百)그룹의 둥사오청 회장(董紹誠).소비유통에서 신흥 체인점에 밀리던 그는 지난 7월 노림수를 던진다. 일본 종합상사인 마루베니가와 도매물류 분야에 진출하기로 한 것. 두 회사는 종합 도매물류 업체인 상하이바이홍(上海百紅)을 설립키로 했다. 상하이 한 철도역 근처에 2만㎡ 규모의 물류센터를 건설, 이를 중국 화동지구의 물류 중심지로 키운다는게 이들의 계획이다. 상하이바이홍은 특히 제조업체 소매상 수입상 세무서 운수회사 은행 철도청 등을 연결하는 선진 종합물류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단순 도매시장 운영에서 벗어나 상품의 흐름(물류)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급한다는 구상이다. 소비유통 분야에서 시작된 유통혁명의 불길이 도매유통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 질서를 재편하고 있는 이들 리더가 중국 유통시장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