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시리즈 7차전이 끝난뒤 '빅 유닛' 랜디 존슨(38)은 눈물을 흘리며 커트 실링(35)을 껴안았다. 메이저리그 100년 역사상 최강의 원투 펀치라고 평가받는 존슨과 실링이 마침내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선사한 순간 둘은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애리조나와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가 개막하기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조직력과 투타 밸런스가 완벽하다는 `전통의 명가' 양키스의 우세를 점치면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바로 방울뱀 군단의 양 이빨인 존슨과 실링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실링과 존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거둔 4승을 모두 책임지며 메이저리그 데뷔 14년만에 나란히 생애 처음으로 챔피언 반지를 끼었고최우수선수(MVP)도 공동으로 선정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애리조나가 포스트시즌 들어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거둔 11승중 무려 9승을 이들이 합작했다는 사실에 이르면 원투 펀치의 파괴력을 실감하게 된다. 월드시리즈 1차전 승리투수인 실링은 3일 휴식하고 3번 등판하는 투혼으로 21⅓이닝동안 4실점, 방어율 1.68의 눈부신 피칭을 했다. 2차전 완봉승에 이어 대역전극의 발판이 된 6차전 승리를 책임졌던 존슨은 3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만에 7차전 마무리로 나와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놀라운 정신력을 발휘했다. 나란히 데뷔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웃었지만 이들 최고 투수들의 과거는 사뭇달랐다. 존슨이 10년 넘게 `지존'의 자리를 지켜왔다면 실링은 부상과 재활로 굴곡진 야구 인생을 보냈다. 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발을 들여 놓은 존슨은 90년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면서 메이저리그 최강의 좌완 투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96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90년부터 올해(21승)까지 11시즌동안 두자릿수 승리를 거둔 존슨은 지금까지 사이영상 4회 수상, 탈삼진왕 9회 수상 등 메이저리그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에 반해 실링은 데뷔 4년차인 92년 휴스턴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한 뒤 14승, 93년에 16승을 거두고 그해 월드시리즈에도 진출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듬해무릎 부상으로 1년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불운에 떨어야했다. 혹독한 재활을 거쳐 실링은 97년과 98년 각각 17승과 15승을 거두고 내셔널리그탈삼진왕에 2년 연속 오르며 믿음직한 에이스로 돌아왔지만 사이영상을 차지하지는 못했고 99년에는 어깨를 다쳐 다시 시즌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시즌 중반 애리조나로 영입된 실링은 올시즌 존슨을 제치고 당당히제 1선발로 나서 생애 최다인 22승을 거두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고 월드시리즈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쳐 생애 첫 사이영상도 가시권에 두게 됐다. 30대 중반을 훨씬 넘긴 나이에 천하를 발 아래둔 이들이 내년 시즌에 김병현과 함께 펼칠 활약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