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5일 난생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4월 총리취임 이후 역사교과서 왜곡과 자신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강행으로 양국관계가 극히 경색된 가운데 이뤄진 6개월만의 뒤늦은 방한이었지만 그의이날 서울체류 시간은 7시간30분에 불과했다. 또 한나라당의 피켓시위 등 반발이 예상돼 고이즈미 총리의 국회방문 일정이 방한 당일 아침 전격 취소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 방한의 하이라이트는 서울공항 도착, 국립묘지 참배에 이어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라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서대문독립공원(옛 서대문형무소터) 방문이었다.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자 한일관계의 `불행했던 과거'를 선명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옛 형무소 터를 방문한 그는 방명록 서명에 이어 곧바로 송영오(宋永吾) 외교부 의전장의 안내로공원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봤다. 이 역사관은 유관순 열사의 투옥장면을 비롯, 일제의 각종 고문기구와 식민지배당시 사용했던 총, 칼, 그리고 항일독립 운동 사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는곳. 고이즈미 총리는 밀랍인형을 이용해 물고문, 성(性)고문 등 일제의 잔학행위 장면이 생생히 재현된 역사관 지하1층 고문실을 둘러보면서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일본측은 고문실의 `생생함' 때문에 방한일정 협의과정에서 고문실이 재현된 역사관 지하1층만은 피하고 싶다는 의사를 끝까지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기된 표정의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관을 나와 옛 옥사를 지난 뒤 형무소 사형장 옆에 마련된 추모비 앞에서 한일 양국의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립공원 방문소감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담히 밝혔다. 하지만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서대문독립공원 방문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많은않았다. 그는 지난 8일 방중시에는 8시간 가량 머물며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루거우차오(盧溝橋)를 방문했지만 전시성 쇼라는 비판도 제기됐었다. 독립공원 방문을 마친 그는 일본대사관저에서 지난 1월 일본 취객을 구하려다대신 목숨을 잃은 고(故) 이수현(李秀賢)씨의 아버지 성대(盛大)씨와 어머니 신윤찬(辛閏贊)씨 및 이씨의 친구들을 만나 고인이 한일관계에 남긴 족적을 기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1시간30분간의 단독.확대 정상회담과 1시간의 오찬을 포함,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함께 보내면서 한일관계의 복원을 모색한 뒤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예방을 마치고 이한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에는 우에노 코세이 내각관방부장관, 다카노 토시유키 외무성 외무심의관 등 경호원을 포함, 30여명의 수행원과 70-80명의 기자단이 수행했고 정부는 만의 하나 `불상사'에 대비, 극도의 내외곽 경호를 펼쳤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훈기자 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