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규제완화. 일선 기업들의 호소다. 정부는 올들어 몇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기업규제완화조치를 내놓았지만 일선을 뛰는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여전히 발목이 붙들려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중소기업체인 A사는 공장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곤욕을 치렀다. 지자체의 지역경제과 소속 일선 공무원이 공장설립 업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이 부서, 저 부서를 전전하다 결국 공장설립 대행기관에 업무대행을 요청하고서야 일을 마무리지었다는 것. 벤처기업인 B사는 창업 승인을 받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창업사업계획 접수창구인 지자체 지역경제과에 서류를 제출했지만 농지과 산림과 환경과 건설과 등 지자체 부서간 업무협의가 지연되는 바람에 두달 넘게 허송세월해야 했다. 전경련 조사에서는 보다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 11개 그룹 39개 계열사가 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 규제로 인해 70여개 사업에 대한 신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SK그룹의 신용카드사업. SK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용카드 사업 진출을 추진해 왔으나 출자총액 제한에 걸려 현재 보류한 상태다. 당초 SK(주)와 SK텔레콤을 통해 2천억∼2천5백억원을 투자, 기존 신용카드회사를 인수하거나 카드회사를 새로 설립할 계획이었으나 일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LG는 동기식 IMT-2000 사업을 벌이기 위한 초기 투자비용을 대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이 사업을 위해서는 LG전자 등의 출자가 필수적인데 출자총액 제한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이 사업에 1천5백억원 정도를 출자한다는 방침이었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그룹내 부품사업 강화를 위해 외국기업과의 합작과 기존 사업부문의 분사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출자총액 제한으로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장기적으로 자동차관련 금융 보험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으나 역시 출자제한에 묶여 주저하고 있다. 코오롱도 화섬사업 강화 등을 위해 금강화섬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나 출자제한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실제로 투자를 계획했다가 추진하지 못하는 경우만 5조원이지 출자규제로 아예 투자계획을 세우지 않은 부분을 합치면 제약을 받는 투자규모는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한 내년 3월 말까지 출자총액 한도 초과분(13조원)을 해소하게 되면 최근 주가하락에 따른 관련기업들의 장부가 대비 손실이 4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손희식.김수언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