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유신정권이 1974년 도입한 중.고교 국정 국사교과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 조직화되고 있다. 이 운동은 몇몇 개인을 중심으로 단편적, 산발적으로 제기됐던 그동안의 경향과는 달리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사태를 계기로 관련 학계가 중심이 되어 파상적으로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런 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단체는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사태에대처하기 위해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교육연구회, 전국역사교사모임을 비롯한 관련 학술 및 민간단체가 조직한 공동연대기구인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운동본부는 현행 국사교과서 및 제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준거안 분석을 토대로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과서 제도 모색'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오는 10일 경주 유스호스텔에서 연다. 이 행사는 '이제는 국사교과서다'라는 슬로건에서 엿볼 수 있듯 그동안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항의에 쏟았던 힘을 우리 국사교과서 개편으로 돌리고 있다. 3부로 나눠 치러질 이번 행사는 먼저 국정 국사교과서 개발 과정과 그 문제점을주로 근현대사 서울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 다음 역사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는무엇이며 새 교육과정에서 역사 교육의 위상이 어떤지를 살펴본다. 지수걸(공주대).서중석(성균관대).양호환(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발표자들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결국은 국정교과서라는 현행 국사교육 체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 발표자 중 한 명인 서울 경동고 신병철 교사는 현행 국정교과서 제도가 일본의역사 왜곡만큼 위험한 획일성을 띠고 있으며, 이는 곧 역사인식의 독재체제라고 규정하면서 검인정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할 예정이다. 다른 역사 관련 단체들도 그동안의 개별적인 활동 대신 연대기구를 만들어 국정교과서 폐지를 위한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한국사연구회가 주도한 20여개 관련 단체는 이미 이를 위한 공동기자회견과 이를 즈음한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강만길 상지대 총장과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그동안 틈날 때마다 국정교과서 폐지를 주창해온 원로급 역사학자들도 각종 언론 기고문을 통해 이런 움직임에 힘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사태와 맞물려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국정교과서 폐지를 국사교육 강화와 연계시킴으로써 역사학계 내부에서조차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대 양호환 교수는 "역사를 필수교과로 한다든지 수업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반드시 역사교과의 위상이 높아지거나 역사교육의 가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는 말로 국사교육 강화라는 주장을 경계하고 있다. 역사교육 강화는 자칫 박정희 유신체제로 돌아가자는 의도로 비칠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국사 국정교과서 폐지 운동에 동양사와 세계사 관련 학계가 참여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이들 비(非)국사학계 내부에서 논란이 있다. 어떤 이는 "동양사와 세계사가 사회 통합과목으로 '격하'될 때 국사학계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면서 "이번 국사 국정교과서 폐지 운동이 자칫 국사교육만 강화하는 우스운 꼴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경계하기도 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