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경제 체제인가] (3) '표류하는 노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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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4일 서울 하얏트호텔.
김호진 노동부 장관을 초청한 외국인 투자기업 간담회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김 장관의 노동정책 설명이 끝나고 참석자들에게 발언 기회가 찾아왔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노사분규가 계속되면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중국 등 제3국으로 옮길 수 밖에 없습니다"
야노 마사히데 서울재팬클럽 회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장내는 일순 숙연해졌다.
외국인 경영자의 불만이 이어졌다.
"노사분규가 일어난 사업장에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불법파업을 주도한 노조지도부를 법대로 처리해야만 파업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도요타 야스시 서울재팬클럽 노동위원회위원장)
이날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노조의 불합리한 임금 인상 요구와 악성 노사분규가 계속될 경우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경고했다.
일국의 장관을 '모신' 자리에서 이처럼 독설이 난무한 것은 그간 불신을 초래해온 정부의 '업보'라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6월 초 민주노총이 불법파업을 강행할 경우 단병호 위원장 등 지도부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안잡나' '못잡나'라는 논란 아래 단 위원장이 명동성당에서 35일간 농성을 벌이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불법파업에 대한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으로 국내 기업인들도 일할 '맛'을 잃은지 오래다.
경총 관계자는 "효성 울산공장과 여천NCC 노조는 명백히 법을 어겼는데도 정부는 공정한 법 집행을 주저해 왔다"며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비꼬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노동계로부터 지지를 얻는 것도 아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가 파업의 불법성에만 주목하지 파업을 초래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이렇다할 처벌을 내린 적은 거의 없다"며 정권퇴진 운동까지 거론하고 있을 정도다.
정부의 무능과 무소신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당장 파업으로 인한 손실만을 겁낸 나머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한다.
지난 6월 항공대란이 벌어지자 건설교통부는 "항공운송사업을 파업을 제한할 수 있는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와 학계가 거세게 반대하자 건교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재계는 노사정위원회라는 틀 때문에 정부 관료들이 꼭 필요하더라도 당장 "반노동자적"으로 분류되는 정책은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영기 노동연구원 부원장은 "노사문제중 정부와 기업간의 몫을 명확히 하는 큰 틀을 마련한뒤 여기에 충실히 따를 경우 노동정책을 올바로 집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도경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