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에서 한국.영국 기업들의 이색 모임이 있었다. 영국대사관이 주최한 이 행사는 "한.영 해외 건설시장 공동진출협력"이라는 세미나였다. 영국의 21개 해외프로젝트 업체들이 한국 기업들과 함께 제3국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한.영기업들간 해외공사 입찰시 가격과 기술력의 상호보완을 통한 효과적 결과는 물론 개별 국가가 참여하는 것에 비해 훨씬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은 생산성과 효율적인 제조및 공사 추진 능력에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기업들은 프로젝트 관리 설계및 파이낸셜 노하우와 서비스에서 상호 보완적인 강점을 많이 갖고 있다. 양국업체들이 손을 맞잡으면 제3국에서의 수주경쟁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찰스 험프리 주한 영국대사) 이미 실적들이 나오고 있다. 방콕의 얀나와 폐수로 프로젝트를 위해 삼성 롯데와 더불어 영국의 설계회사인 오베 아럽이 함께 일했다. 한.영간의 비즈니스 협력은 윌리엄 브로튼 함장이 지휘하던 영국 선박 프로비던스호 선원들이 부산 주민들과 식량과 기타 물품들을 교환하던 179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3년 경복궁에서 우호, 통상, 항해 조약이 두나라 사이에 조인되었다. 영국 정부는 그 다음해 서울 덕수궁 옆 토지를 사들여 1890년까지 여러채의 현대식 건물들을 건립했다. 이곳이 현재 영국 대사관이 들어서 있는 중구 정동이다. 양국간의 무역은 20세기 초부터 영미 담배회사와 쉘이 들어오는 등 활발해지다가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중단됐다. 한국전쟁후 양국 무역관계는 다시 강화되었면서 1960년대 영국 회사들은 한국 보험시장을 키우는데 협력했으며 은행들도 한국에 지점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울산공대에 자문가들과 농촌개발 자문가들을 포함한 일련의 기술 지원팀과 지질학 연구팀, 의료연구팀들을 파견했다. 한국이 본격적인 개발연대에 접어들면서 양국의 경제적인 교류는 더욱 심화됐다. 특히 현대는 그룹 웅비기에 영국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은 울산에 조선소를 설립하기 위해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을 찾아갔다. 그는 지폐에 담긴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한국이 전통적인 조선강국임을 납득시키는데 성공해 차관도입에 성공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1968년 현대는 코티나를 조립하기 위해 영국 포드사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고 이들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포니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영국산 장비를 수입해서 고리1호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도 했다. 1990년대 서울 증권거래소의 개방은 또 한차례의 영국 붐을 가져 왔다. 영국의 자딘 플레밍사는 증권거래를 허가받은 최초의 외국 증권회사였다. 반면 한국의 삼성 LG 대우 등 여러 회사들은 영국에 제조기반을 두는데 주력했다. 유럽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영국을 선택한 것이었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기 직전 삼성 LG 대우 현대 등 4대 전자업체와 협력업체들의 주도아래 영국 투자 붐이 절정에 달했다. 당시 자본재 위주였던 한국기업들의 영국투자는 최근들어 자체 기술력이나 제품경쟁력을 가진 벤처기업들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위성방송 수신업체인 휴맥스나 맥슨전자 등이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최근 두 나라 사이의 무역은 최대 호황을 맞아 1999년말에는 66억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올해에는 다시 늘고 있다. 무역 이외의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LG텔레콤에 브리티시텔레콤, 삼성물산에 테스코, 진로에 얼라이드 도멕, LG에너지에 파워젠, 동성화학에 ICI 등이 들어와 공동 사업을 전개해 가고 있다. 이에 앞서 BP와 같은 영국의 대기업들도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장기투자를 하고 있다. 우범석 런던개발청 한국대표는 "앞으로 정보기술(IT) 업종 등 첨단분야에서 양국간의 협력이 보다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