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생금융시장 격돌 ]

산업은행이 씨티은행 서울지점과의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거부, 국내외 금융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국내 파생금융시장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는 양 은행의 갈등은 글로벌 금융세력과 보수적인 국책은행과의 대결 양상을 띠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사태의 발단은 씨티 서울지점이 최근 산업은행과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본약정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특별조항인 ''링 펜스(Ring Fence)''조항을 요구한 데서 비롯됐다.

산업은행은 거래 약정서에 이 조항을 삽입하는 것을 거부했고 씨티측이 끝내 링 펜스를 고집할 경우 씨티와의 파생금융 거래도 중단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링 펜스는 ''동그란 울타리''란 뜻의 금융용어.특정 지역에 울타리를 쌓았다고 가정하고 그곳에서 일어난 채권 채무관계를 자체 자산만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은행 본점과 지점 사이에 자금 지원이 중단된다.

◇ 링 펜스, 왜 문제인가 =이 조항은 불평등 계약의 성격을 띠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경우에 따라 어느 한쪽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데 외국계은행과 링 펜스 조항에 합의할 경우 국내은행은 무한책임을 지는 반면 외국은행은 지점 차원에서 제한된 책임을 지게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외국은행들은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최악의 경우 서울지점에서만 손해를 보고 끝낼 수 있어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에게는 불리한 거래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산업은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은행들은 외국계의 링 펜스 요구를 관행적으로 수용해 온게 사실이었다.

파생금융 실력의 격차가 뚜렷해 ''배우는'' 입장이었던 데다 국내 파생상품의 거래성격이 대부문 ''무위험 거래''에 치중돼 있었기 때문에 ''무한 책임''을 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국내 파생금융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고 산업 국민 등 일부 은행들이 거래기반을 속속 확충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은행이 이번에 국내 은행으로는 처음 링 펜스에 반기를 든 것은 이같은 자신감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개별 금융기관간 거래조건에 대해 개입할 수 없다"며 "하지만 외국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등을 통해 불공정한 거래가 이뤄졌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 국내 시장 어느정도 성장했나 =글로벌 경제의 가속화로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금리와 환율의 변동이 심해지면서 현대 삼성 등의 주력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증권 보험 캐피털 등 금융사들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작년 한햇동안 파생외환상품 거래 규모는 총 8천2백31억달러로 지난 1998년의 2천9백90억달러에 비해 무려 1백75%이상 증가했다.

물론 아직까지 파생금융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씨티 도이치 체이스 등 외국계가 주류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꾸준히 시장의 일각을 차지해 왔고 최근에는 국민은행이 호주 매쿼리은행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신흥 세력으로 떠올랐다.

국민의 지난 1.4분기 취급실적은 1백20억달러로 작년 전체 거래규모인 2백40억달러의 절반에 달하고 있다.

나머지 국내 은행들은 외국계의 상품을 구입해 국내 기업들에 되파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데 그치고 있지만 제일 서울 등을 중심으로 이 분야 진출을 노리고 있다.

소매분야의 파생금융 시장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씨티는 지난달 24일부터 원금보장형 해외뮤추얼펀드 투자상품인 ''씨티가란트-생명공학편'' 판매를 시작해 지금까지 6백억원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원효성 이사는 "이 상품은 씨티그룹이 콜옵션(주식인수권)을 이용해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원금을 보장한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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