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사용될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결과 뚜껑이 3일 마침내 열렸다.

역사 왜곡으로 말썽 많았던 일본 우익교과서에 쏠린 한국 및 중국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몰라도 일본 문부과학성이 검정과정에서 신경을 쓴 흔적은 역력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가해사실을 미화, 왜곡했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터무니없는 내용이 삭제 수정됐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대목에 메스가 가해졌고 지배당시의 가혹행위를 보완한 방향으로 내용이 바뀌었다.

동남아 침략을 식민지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어거지를 부렸던 내용도 사라지거나 사실에 가깝게 바로잡혔다.

''역사왜곡은 안된다''며 한국정부가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오고 한국 정치인들이 ''교과서 외교''에 총력전을 펼친 점을 감안하면 마땅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우익교과서 만이 아니다.

7종이 더 있다.

문제는 채택 비율이 가장 높은 도쿄서적 오사카서적 등 4개 출판사의 책에선 군대위안부 내용이 삭제됐다는 것이다.

니혼문예출판은 강화도조약이 강제 체결됐다는 내용을 완화했으며 시미즈출판은 을사조약이 구미열강의 지지를 얻어 체결됐다고 적고 있다.

한국정부와 역사학계가 ''새역사… 모임''의 교과서에 신경을 뺏긴 틈을 타 나머지 교과서들은 과거 잘못을 감추거나 정당화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문부과학성은 군대위안부 내용 삭제에 대해 중학생들이 알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을 떠나 21세기 일본사회엔 극우보수와 폐쇄적 내셔널리즘의 기류가 흐르는걸 부인할수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잘못을 감추려는 쇄국적 역사관이 미래를 해친다고 경고하지만 역사를 미화하는 일본우익의 목소리는 높아만 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장 실리를 챙긴 것은 ''새역사… 모임''일 것이란 견해가 적지 않다.

지지기반도 취약했던 이 단체야말로 교과서가 한.일 양국의 핫이슈로 부상하며 동조세력을 크게 넓혔다는 분석이다.

정치와 경제는 구심점을 잃은채 비틀거리고 역사인식은 과거로 후퇴한 일본에서 21세기 강국의 이미지는 또 한발짝 멀어졌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