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요즘 터키 이스탄불 주식시장의 모습을 보면 터키 국민들의 기분이 지난 몇년간 얼마나 심하게 요동쳤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터키에서는 지난 1999년 곧 안정적인 정부가 들어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엄청난 재정적자, 고공비행하는 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자 주가가 폭등했다.

종합주가지수는 99년부터 2000년 초까지 무려 6백50%나 뛰어 올랐다.

실현 불가능해 보였던 3당 연정이 이루어졌고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유럽연합 회원국 후보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황은 지난해 봄부터 반전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새로운 대통령 선출을 둘러싼 대립 끝에 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1월에는 은행들의 자금난으로 금융 위기 직전까지 몰렸으며 결국 IMF로부터 75억달러의 차관을 지원받았다.

여기에 정치 반목이 겹쳐 지난달 19일에는 뷜렌트 에체비트 총리가 아흐메트 네제트 세제르 대통령이 던진 서류철을 맞고 미팅중에 회의장을 뛰쳐나가 불화를 드러냈다.

정부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이날 터키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하루만에 50억달러를 빼나갔다.

이스탄불 주가는 이틀만에 63%나 하락했다.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계속된다면 2백억달러인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는 금세 바닥나고 터키 리라는 평가절하될 것이다.

리라가 평가절하되지 않더라도 수직 상승중인 금리 때문에 정부의 적자부담은 한계에 도달할 지경이다.

한달 만기 국채금리는 최근 1백44%까지 뛰었다.

은행간 콜금리는 수천%나 올랐다.

지난해 11월 IMF가 구제금융을 지원한 이후 정부 관료들은 1백%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이 30% 중반대로 내려가고 정부의 재정수지도 흑자폭을 늘리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물가를 잡기 위해 시행한 조치들 때문에 지난해 물가상승률과 금리가 너무 급속히 떨어져 경기가 과열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방만해진 민간 소비와 가난한 정부를 만족시킬 만큼 외환 유입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금리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싼 값에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은 수익 악화로 허덕이게 됐으며 외화 유출이 가속화됐다.

IMF는 구조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터키 정부에 부실은행을 청산하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여야 갈등으로 관련 법안들은 계류되기 일쑤고 국영 독점 기업인 터크텔레콤의 민영화 입찰에는 외국업체가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다.

터키가 최근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실패한 것은 경제가 아닌 정치 때문이다.

어차피 터키는 지난 20년간 두자릿수 인플레이션, 막대한 재정적자,널뛰기 장세에 시달려 왔다.

금리 상승으로 은행들은 고통을 받았지만 은행들이 가진 돈 대부분을 기업이 아니라 정부에 대출해 줬기 때문에 민간부분이 느끼는 피해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러나 문제는 인플레이션 완화 프로그램이 실패하면서 변화에 대한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무력 사용과 부패를 몰아내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인권보호를 강화하려는 일련의 노력들도 경제개혁 실패와 맞물려 흔들리고 있다.

지금 선거가 실시된다면 가장 수혜를 입는 것은 극우파가 될 확률이 높다.

이는 지난 96년 개혁 정책을 실패로 몰고 갔던 고립주의와 경기 침체가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터키가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민주적인 열린 사회가 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위기를 더 겪을 것인가다.

정리=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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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2월24일~3월2일)에 실린 "터키의 미래(Turkey''s Future)"라는 기사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