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교향악단의 효시는 1928년 창립된 중앙악우회다.

박경호 현제명 고경봉등 15명이 참여한 중앙악우회는 매월 연습하고 연주회도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경성제대와 연희전문에서도 학생관현악단이 생겨났다. 경성제대 악단 단원엔 김성진 김인달같은 의대생도 있었다.

최초의 직업연주단체는 34년 탄생한 경성방송관현악단이었다.

홍난파가 지휘를 맡아 본격적인 교향악단이 되는 듯했지만 41년 홍난파 타계후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다.

그러다 광복 직후인 45년 9월 계정식 현제명 김성태가 고려교향악단을 창단하고 곧 첫 연주회를 가졌으니 이것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모태다.

바이올리니스트 계정식이 지휘를 맡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에그몬트''서곡을 들려줬다.

고려교향악단은 그러나 재정난으로 해체되고 48년초 김생려가 고려와 서울관현악단 단원을 모아 서울교향악단을 발족시켰다.

당시 서울교향악단의 인기는 월2회 정기연주회를 열고 한 프로그램을 2∼3일씩 계속할 만큼 대단했다.

그러나 6·25로 단원이 흩어지는 바람에 50년 11월 해군정훈음악대로 조직됐다가 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바뀌고 57년 다시 서울시향으로 새출발했다.

바로 이 서울시향이 오는 15일 6백회 정기연주회를 갖는다는 소식이다.

데뷔곡인 ''운명''과 강준일의 ''사물놀이 협주곡-마당'' ''예스터데이''등을 두루 연주하리라 한다.

서울시향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교향악단이자 KBS교향악단과 더불어 국내 양대 교향악단으로 꼽힌다.

80년대엔 국내외에서 활기찬 움직임을 통해 음이 정확하고 낭만파음악에 강하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하지만 90년대 들어 잦은 상임지휘자 교체와 활동부진으로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서울시향은 서울시민을 비롯한 국민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교향악단이어야 한다.

정기연주회조차 주목받지 못하는 허울뿐인 시향은 무의미하다.

역사와 전통만 내세울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수준과 시민들의 호응을 얻는 게 중요하다.

6백회 연주를 계기로 서울시향이 진정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