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반발로 국민과 주택은행간 합병 논의가 중지되는 사태를 맞으면서 은행 구조조정과정에서 새로운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금융감독위원회는 "합병논의 중지가 무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지만 정부의 희망대로 합병이 계속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금융계에서는 노조의 반발로 국민+주택의 합병구도가 깨질 경우 다른 은행의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쳐 개혁원칙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개혁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내년 2월까지 마무리짓겠다던 4대부문(금융 기업 공공 노사) 개혁도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금융계에서는 국민과 주택은행의 향후 진로및 금융구조조정 전망에 대해 세가지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먼저 합병논의 중지가 곧바로 합병무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노조의 힘에 정부와 해당은행이 굴복하는 케이스다.

이렇게 되면 ''대형은행 탄생을 통한 은행구조조정의 마무리''는 사실상 물건너 가게 된다.

특히 두 은행간 합병무산은 한미+하나, 신한+제주, 한빛+외환 등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다른 은행간 합병및 통합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노조 역시 이번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총력투쟁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구조조정의 원칙이 노조의 반발로 꺾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이후 은행들이 자율적인 합병논의를 재추진할 수 있지만 조속히 금융개혁을 마무리짓고 신용경색상황을 풀려고 했던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어떤 방식으로든 노조를 설득해 합병 또는 통합작업을 마무리짓는 것이다.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민과 주택은행이 "강제적인 인원감축은 없다"고 누차 강조한 것도 이같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구상으로 풀이된다.

한 사례로 1대 1 합병이 아니라 지주회사아래 두 은행이 각각 독립법인체로 묶이고 향후 2~3년간 자연적인 인원감축 등을 통해 통합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노조를 달래는데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점포의 70~80%가 중복돼 있고 업무영역마저 소매금융쪽에 치우친 두 은행이 인력감축없는 통합을 한다면 실질적인 비용절감 효과 등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합병이 아닌 지주회사식 통합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것이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면돌파''를 하는 것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날 "대주주가 합의하면 가능한 것이지 노조가 반대한다고 합병이 무산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의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국민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먼삭스는 M&A(인수합병)팀을 지난 12일 한국에 파견해 주택은행의 어드바이저인 매킨지컨설팅측과 함께 합병비율 등 구체적인 조건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대주주간 합의만 이뤄지면 노조반발과는 무관하게 합병을 전격적으로 선언할 가능성도 높다.

금감위 관계자는 "두 은행간 합병은 정부가 유도한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진행해 온 것"이라며 "두 은행간 논의가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금융노조측과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계속 대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금융노조측은 정부가 강제적인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 저지투쟁을 벌일 예정이어서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