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국회 재경위 소회의실.재경위 야당측 간사인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국민의 세금을 깎기 위해 밤새 정부·여당과 밀고 당기며 심의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부터 밤을 새워가며 심의한 결과 농·수·임협 예탁금 비과세기간을 3년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안 등 조세관련법안의 여야합의를 이끌어냈고 1조원 이상의 세수(稅收)규모를 삭감하는 등 국민부담을 줄이는 데 야당이 힘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여야 의원들 사이에선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였고 법안소위 위원장인 민주당 홍재형 의원도 여야간 합의를 존중하자며 개정안의 소위 통과를 선언했다.

그러나 소위 의결 당시 당 지도부에 보고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안 의원이 돌아오자마자 상황은 급변했다.

지도부가 합의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본인이 불참한 의결은 무효라고 떼를 썼다. 당 방침이 내년도 예산안 10%(10조원) 삭감이므로 세입예산도 따라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재경위 전체회의는 무산됐고 개정안 통과도 유보되고 말았다.

심도 있는 논의로 조세감면대상부터 확정하고 그에 따른 세수규모조정이 이뤄져야 함에도 야당은 세수규모 삭감폭부터 확정해놓고 조세감면폭을 늘리는 방식을 요구한 것이다.

이같은 거꾸로 된 예산심의는 세출예산을 다루는 예결특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당은 10조원이라는 삭감목표금액을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두부 모 자르듯이'' 부서별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14일 열린 예결위는 한나라당의''대선언론문건''파문이나 청와대''총기사고 조작 의혹''을 놓고 여야가 정치공방을 벌이는 통에 심도있는 정부부처별 예산 심사는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뿐만 아니다.

한나라당은 관치금융청산법등 예산관련 4개법안을 제·개정한다면 삭감폭을 줄일 수 있다며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10조원 삭감 목표도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한 ''원칙''이라기보다는 야당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지렛대로 쓰겠다는 의도인듯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태웅 정치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