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환 < 인제대 의대 교수 / 가정의학 >

지난해 11월 2만여 의사들이 ''의권수호와 완전 의약분업 쟁취''의 기치아래 장충체육관에 모인 이후 1년 동안 계속된 의사파업 사태가 의·약·정 합의로 진정되고 있다.

그동안 의사들은 5차례 총파업을 벌였고 전공의는 4개월간 병원을 떠나 투쟁에 참여했다.

의대생들은 ''집단유급''직전까지 갔었다.

이번 의료대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의사들은 파업을 통해 더 이상 정부주도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사들의 단결은 의사 자신들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의사들은 올해를 ''의료개혁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어떤 이는 남과 북의 대치상황에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선전하는 북한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위정자들의 무리한 의료정책(단시일내 전국민 의료보험화 및 저비용 의료정책)이 남북정상 회담이후 형성된 ''뚜껑열린 분단체계''에서 시험받고 있다고 해석한다.

다른 이는 의사집단이 사회에서 ''특권층''이 아니라 ''지도층''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전통을 갖추지 못했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의사들의 파업은 정부의 준비부족으로 실패했을 의약분업 제도가 오히려 정착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시민들은 의료가 제 역할을 하지못할 때의 혼란과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또 더이상 정부가 의사파업에 속수무책이어서는 안되며 의료계 또한 시민들의 감정과 이익에 반하는 파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정부와 의료계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한 차원 높은 의료제도를 만들기 위해 다음 과제들을 풀어야 한다.

첫째 적정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재원보다는 재원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의료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재원 마련과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시민과 정부가 의료보험료를 적정하게 부담할 터이니,의료계와 건강보험 운용자는 거기에 맞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현재는 ''정부가 하라는대로 하면 병·의원 경영이 안되는 상황''이다.

위기상황의 의료보험 재정이나 의료보호 재원이 대폭 개선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의료정책도 구두선일 뿐이다.

둘째 의료계는 시민들에게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시민들에게 의사는 개인적으로 만나면 좋은 선생님일지 몰라도,집단적으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익집단과 다를 것이 없다.

타결된 의·약·정합의안을 보면 시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처방전 양식을 바꾸려고 하고 또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는 많은 의료봉사자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막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즉 의·약·정 합의로 만들어진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사와 약사가 동시에 의료봉사활동을 벌이지 않는 한 의사는 약을 줄 수 없도록 돼 있다.

이런 결과는 의·약·정 협의에서 시민단체를 배제할 때부터 예상됐던 결과였다.

셋째 우리의 의료제도를 선진화시켜야 한다.

우리 복지수준은 국가 경제력에 비해 너무 뒤처져 있다.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이지 않고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진국의 경우 의사가 그렇게 친절할 수 없고,의료서비스 수준도 만족스럽다고 한다.

선진국 정부는 의료와 교육,기타 복지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공동부담(세금 또는 보험료)을 늘리고 서비스를 표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의사들은 적절한 경제적 대우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경심을 지켜내기 위해,그리고 국민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말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약사법의 독소조항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정부와 정치권도 사태를 봉합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시민편에 서서 중심을 잡고 약사법 개정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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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서울대 의대
△서울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전임의
△경실련 보건의료위원회 위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