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살리기''에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동원되기까지 금융감독원 등 정부당국의 노골적인 개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마디로 시장을 무시하고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하는 관치경제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모 외국계 증권회사의 기업분석가는 "건설살리기에 정부가 앞장서고 당사자인 현대그룹은 따라가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어쩔수 없이 끌려가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법정관리 또는 감자.출자전환에 목소리를 높였던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3일 하루 아침에 말을 바꿔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해외(브루나이)에서는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현지공사 미수금 회수를 위해 뛰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한술 더 떠서 "신규자금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정부의 지시 없이는 움직일리 만무한 토지공사는 이튿날 ''서산간척지 위탁판매 선수금''이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현대건설에 2천1백억원의 거금을 지원했다.

미국 나스닥시장까지 갈만큼 시중은행중에선 가장 선진적이라는 주택은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토공이 보증한다면 좋다"면서 하루만에 1천억원을 내놓았다.

현대살리기의 ''하이라이트''는 이근영 위원장이 지난 15일 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을 만나 건설지원에 나서라고 요청한 대목이다.

그동안 정부 관계자들이 입버릇처럼 "채권단이 알아서 할 일이며 시장이 신뢰하는 자구안을 내놓든지 않든지는 현대그룹에 달렸다"고 말해온 것과는 너무 앞뒤가 맞지 않아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계열분리, 경영투명성, 주주이익 중시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던 한국정부의 재벌정책이 일관성을 잃은 감이 없지 않다"(빌 헌세이커 ING베어링증권 상무)

이에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해명은 이렇다.

"현대건설의 유.무형 기업가치가 막대하다. 더욱이 지금 당장 쓰러지면 국가경제에 충격이 너무 크므로 일단 다른 계열사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물막이'' 공사를 해야 한다. 물막이공사를 끝낼 때까지는 최소한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이런 논리를 펴는 정부가 다른 한쪽으론 이미 물막이(계열분리)를 친 현대자동차와 중공업을 반강제로 건설지원에 동원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특히 채권은행도 아닌 금융감독기관의 책임자가 민간기업 총수를 직접 만나 협조라는 미명 아래 압력을 넣는데 대해 시장이 비판적인 것은 당연하다.

증권가 기업분석가들은 금감위원장의 이런 행각에 대해 "물막이공사를 빌미로 이미 잘 쌓아 놓은 다른 물막이를 허무는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한다.

만약 현대자동차가 현대건설과의 물막이공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다임러크라이슬러라는 든든한 해외제휴선을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은 정부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6일 현대자동차와 중공업의 주가는 떨어졌고 외국인투자자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부정적이다.

"이번 지원으로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유동성 위기가 또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에도 친족 기업이 지원한다면 이들마저 부실화될 우려가 있고 그 충격은 더 클 것이다"(데이비드 크레그 매쿼리 IMM자산운용 사장)

문희수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