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김치냉장고에 들어가는 통을 찍어내는 회사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이젠텍 L사장이 딱 잘라 말한다.

요즘에도 회사를 이렇게 소개하는 곳이 있나….

''e비즈'' ''B2B'' 같은 용어에 익숙한 기자의 귀에는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올해 매출 5백억원에 순이익 60억원이 예상되는 탄탄한 중소기업이다.

올해 53세인 L사장은 지난 79년 프레스기 한 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상고를 나와 기술은 처음부터 몰랐다.

하나 하나 현장에서 배워 나갈 뿐.

그 시절 L사장은 온몸을 던지며 프레스기 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97년 L사장은 마침내 ''김치냉장고 통'', 즉 인케이스 어셈블리를 개발해 냈다.

그냥 단순한 통은 아니었다.

용접과 이음새가 필요없는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기술력의 결정판이었다.

김치냉장고 시장 1위 M사에 독점 공급되며 회사를 급성장시켰다.

이제 대망의 코스닥 등록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술로 승부하는 벤처라면 벤처요, 포기하지 않는 벤처정신이라면 바로 그 정신이라 할 만한 세월이었다.

하지만 L사장의 마음속엔 걸리는게 하나 있다.

힘들었던 지난 20년간 써왔던 원래 회사이름 조양을 이젠텍으로 바꿨다는 점이었다.

"시장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첨단 이미지가 물씬 풍겨야 한다"는 주주들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실제 올 상반기에 거래소와 코스닥에서 사명을 바꾼 기업은 96개로 지난해 전체 42개보다도 2배이상 많았다.

''닷컴'' ''텍'' ''넷'' 같은 ''첨단풍'' 이름이 풍년을 이루고 있다.

"옛날엔 사명만 보면 뭐 하는 회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요즘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L사장은 "코스닥에 올라가는 것이 무슨 미인선발 대회 나가는 것 같다"고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담배를 한 대 물고 다시 공장을 살피는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게 아니었을까.

"형식보다 실질을, 그리고 간판보다 속내용을 더 인정해 줄 수 있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하루빨리 자리잡기를…"

서욱진 벤처중기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