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1도

하늘도 땅도 시퍼렇다.

저런,저 철새들

한 줄 길게 두 줄 짧게,

그 뒤론

한쪽 길고 다른 한쪽 짧은 쐐기 모양 흐트리지 않고

허공을 건넌다

죽음같이 텅 빈 겨울 하늘에 황홀한 좌표 그리는 저 선(線)들!

인간의 행로보다도 정연한 저들의 행로가

인간을 하늘에 줄 서게 만든다.

저 중에는 과부 홀아비 고아도

왕따당한 자도

노숙자도…

선들이 휘돌며 성긴 눈발로 내려와

목을 감는다.

내 성대(聲帶)가 기러기 소리를 낸다

시집 ''버클리풍의 사랑노래''중에서

약력=1938년 서울 출생.서울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