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크러컨교수의 訪美초청 ]

1974년 봄,매크러컨 교수로부터 기회있는 대로 미시간 대학을 방문해 달라는 연락이 와 왔다.

그는 GM 고문이기도 하니까 GM 수뇌부와의 만남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미시간대에 가니 매크러컨 교수 부부는 미국 중서부 사람 특유의 소박한 친절로 필자를 맞았다.

교수 부인 자신이 손수 운전해 대학 캠퍼스를 안내했다.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까지 역임한 저명한 교수 부인이었다.

미국 아닌 다른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디트로이트 GM 본부 방문땐 매크러컨 교수가 운전대를 잡았다.

GM 본사에서 워싱턴 출장중인 회장을 제외하고 사장 부회장 중역 등 디트로이트에 있는 GM 간부는 모두 만났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아시아 담당 부사장의 정세 브리핑이었다.

부사장은 "월남에서 미국은 1년안에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깜짝 놀랐다.

월남전이 미국내 반전 시위 등으로 순탄치 않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당시 철군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GM 부사장은 철군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1)월남전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

2)전선도 확실하지 않은 게릴라전으로 미국 인명피해가 너무 크다.

3)끝이 보이지 않는 월남전에 미국민은 지쳐있는 데다 반전 무드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 등을 제시했다.

해박한 정보와 정세분석,계수까지 열거하는 부사장의 설명에 필자는 반론할 수 없었다.

GM같은 세계적 기업의 중역들은 곧바로 미 국무장관직을 맡아도 수행할 식견을 갖췄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GM 수뇌부와의 회의에서 필자는 조심스럽게 미국 정책 요로와의 채널 조직 가능성을 타진했다.

매크러컨 교수도 필자의 제안에 대한 배경 설명을 곁들였다.

GM 사장은 한.미간 채널 구축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흐르다보니 교수는 구체적인 인물을 거명했다.

타임지 리넨 사장 같은 분이 추진 적임자라고 말했다.

"리넨 사장은 여기 계신 중역들의 친구이기도 하고,워싱턴 조야에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 리넨 사장과 상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추진 상황을 수시로 알려 드리겠습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날 오후에는 GM 공장을 둘러봤다.

매크러컨 교수가 직접 안내하다시피했다.

GM 측에서도 직원을 붙여주었다.

GM이 세계에 자랑하는 캐딜락 조립 라인이었다.

엄청난 공장 규모였다.

입구에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천장에 각종 부품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라인이 거미줄같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이들 라인을 통해 각종 부품이 분초의 차질도 없이 조립 장소로 운반됐다.

필자에겐 모든 게 놀라움이었다.

조립 라인 직공들도 틈새없이 날라다 주는 부품을 제때에 처리해서 다음 공정으로 인계했다.

열심히들 일했다.

곁눈질도 없었다.

역시 세계 제일의 GM이 자랑하는 캐딜락 조립라인이었다.

놀란 심정을 가라앉히고 세심히 보니 여러가지가 눈에 띄었다.

우선 직공 5명 중 2명 가량은 백색에 가까운 혼혈,2명은 흑인,나머지 1명은 여성 비율이었다.

자세히 보니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조립라인 바로 옆에 담배꽁초와 버린 껌이 눈에 띄었다.

필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고,일면 놀랐다.

담배꽁초와 껌이 버려지다니.

더욱 놀라운 건 이 담배꽁초 중에는 립스틱 색깔이 묻어 있는 것도 보였다.

순간 필자는 미국 제조업의 문제점이나 치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때 마침 하버드대 교수 보겔이 "Japan As No. 1"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

앞서 소개한 허만 칸은 "21세기,미국을 앞설 일본" 운운하면서 떠들어댔다.

귀로에 일본 하네다 공항에 기착했다.

짐을 기다리는데 짐은 계속 밀렸다.

다른 젊은 포터 두 사람이 보다 못해 "우리 책임은 아니지만"하면서 껑충껑충 뛰어가 그곳 짐까지 재빠르게 내려 놓았다.

일본 근로자들의 규율과 근면성,책임감의 표본을 보는 듯했다.

몇년 뒤 한국 대우자동차에서도 같은 광경을 목격하고 흐뭇한 느낌을 가졌다.

[ 김입삼 전 전경련 상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