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흥 < 이화여대 교수 / 경영학 >

한때 한국전쟁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남침이냐, 북침이냐 공방전이 불꽃을 튀겼다.

이 논쟁이 본격적으로 촉발한 것은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이 나오면서부터다.

이 책은 북침설의 가능성을 소개했다.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운동권 학생들과 진보세력은 이 책 내용을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 커밍스 교수의 새 저서 "한국의 양지 (Korea"s Place in the Sun)"를
보자.

지난 97년초 미국 뉴욕의 노튼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출판 당시 국제정치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1860년대부터 1996년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이 책은 이전의 그의
저서가 북침설을 정당화한 것에 비해서는 상당히 균형감을 가진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고 있는 현실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그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몇년동안 살았고 그의 부인이 한국인이긴
하지만 한국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모자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예는 이것뿐이 아니다.

하버드대학의 역사학 교수이며 주일대사를 지낸 라이샤워와 페어 뱅크가
공저한 "동양사 (East Asia)"도 우리가 느끼기에는 사실과 매우 다르다.

한국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입시를 치르고 난 뒤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시기였다.

친지의 권유로 "백경" "유리알 유희" 등과 함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이나 한국문화에 대한 그의 편견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은 한국이 반만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민족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의 부속국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물론 라이샤워가 이 책을 집필할 때만 해도 한국은 수천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약소국이었다.

그러니 한국을 만만하게 본 것이리라.

이 책에서 전통적 분야 15개장 가운데서도 중국은 9개장, 일본은 3개장,
한국은 2개장, 베트남 1개장으로 구성했다.

한국이 세계문화에 끼친 공헌에 비해 기술한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내용상에 있어서도 한국을 단지 주변국가로 취급하고 있다.

더구나 현대화 과정을 취급한 13개장 가운데서 한국을 독립된 장으로 두지
않고 중국이나 일본을 기술하는 장의 일부에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관련 기술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11장에서 조선의 출현을 중국식
국가의 출현으로 보고 있다.

또 일본에 대한 기술이 2백21쪽인데 비해 한국은 겨우 17쪽만 차지하고
있다.

초기에는 중국문화를, 후기에는 서양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창의성
없는 국가로 매도하고 있다.

라이샤워가 한국을 이처럼 폄하했는데도 한국은 그를 오랫동안 융숭하게(?)
대우해주었다.

전국 곳곳에 붙은 도로표지판을 보라.

알파벳 글씨 위에 반달 모양의 이상한 표시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 이른바 "라이샤워 표기법"이다.

언어학자도 아닌 사람이 만든 그 괴상한 표기법을 수십년간 써온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영향은 소련의 붕괴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의 외교 무역 군사 과학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의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의 도시에서 거의 같은 재료로 만든 점심식사 비용이 일본 스시는
15달러이고 베트남 국수는 3달러이다.

이는 미국에 비친 두 나라의 국력 차이, 이미지 밸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이 세계 문화발전에 기여한 문화 민족국가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우리의 긍지를 높이고 우리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방법이다.

이를 세계에 알리는 가장 빠른 길은 미국인이 읽는 역사책에, 미국 내에서
읽히는 역사책에 이 사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영어로 쓰여진 동양사가 문화적
편견에서 벗어난 양식있는 학자의 손으로 다시 쓰여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이 잘못 소개된 다른 나라의 자료들을 찾아야 한다.

그 자료들을 고치도록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자료를 그곳에 보내고 담당자에게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노력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이런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참모습을 소개하는 데 네티즌들이 앞장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parkch@mm.ewh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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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자원공학과
<>KAIST 경영과학 박사
<>대한품질경영학회장
<>저서:품질경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