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호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이름깨나 날리던 대학교수였다

그는 올해 금융감독원이 출범하면서 금감원 부원장으로 부임했다.

강 부원장은 8일 교수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기자실에 칠판까지 걸어놓고 무려 1시간15분동안 "금융공학 강의"를 진행
했다.

교수시절의 명성에 걸맞게 강 부원장의 강의는 사뭇 명강의였다.

그저 억압적이고 일방통행식 관료들에게만 익숙해진 기자들로선 신선하기
까지 했다.

단순히 형식만이 아니었다.

강 부원장의 태도도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공모주청약제도를 바꾸기로 한데 대해선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은
다소 비판을 받더라도 고치기로 했다"며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했다.

신협과 새마을금고에 대한 수익증권 우선 환매의 사실상 철회방침에 대해서
도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도 역시 관료조직의 한사람이었다.

강의의 형식을 도입하는 신선함을 발휘했지만 관료들이 갖는 거대한 벽을
깨지는 못했다.

우선은 대우채권 환매비율 확대문제였다.

이에 대해 강 부원장은 "이는 전적으로 업계자율 결정사항"이라며 "감독
당국에선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익증권 환매를 제한한 것이 업계자율의 결정이었듯이 환매비율을 높이는
것도 전적으로 업계의 몫이라는 논리였다.

여기에는 업계가 환매비율을 높이기로 결정하면 감독당국은 승인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수익증권 환매제한이 정부의 결정이었다는 건 천하가 다아는 사실
이다.

정부도 틈만 있으면 "50%,80%,95% 환매는 정부의 보장사항"이라고 강조해
왔다.

투자자들은 이를 믿고 긴급자금이 필요했더라도 11월10일 이후 환매해가는
인내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환매비율을 높인다면 정부정책은 심한 불신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11월10일 이후 80%를 환매해간 사람들은 상대적 불평등으로 인해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업계자율"이란 이름을 빌려 이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공모주청약제도를 시행 7개월만에 다시 바꾸겠다는 것도 스스로 불신을
초래한 행위인 건 물론이다.

이렇게 보면 강 부원장의 이날 칠판강의는 형식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업계자율"이란 커튼뒤로 숨는 고답적인 관료스타일 그대로였다.

< 하영춘 증권부 기자 hayou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