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해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요즘 TV사극 "왕과 비"에 영의정으로 등장하는 정창손은 84세에 은퇴한 뒤
86세에 별세했다.
물론 개인의 명망도 그만큼 높았겠지만 관운이 대단했던 인물들이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70세가 넘어서까지 현직에서 일한 관리가
드물었다.
또 70세가 가까워지면 스스로 물러나 쉬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었다.
명예퇴직으로 "70세 정년"이 지켜지고 있었던 셈이다.
비록 70세가 넘었어도 명망이 높아 일을 맡길만한 대신들이 사직을 자청하는
상소를 올리면 임금은 연회를 베풀어 나무의자와 지팡이를 하사하며 사직을
간곡히 만류했다.
이 궤장 하사제도는 연로한 대신을 우대하는 궁중의식의 하나로 신라때부터
내려오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라의 김유신, 고려의 강감찬 최충 최충헌등은 궤장을 받아 70세가
넘어서도 계속 정사를 봤던 인물들이다.
조선에서는 이제도가 "경국대전"에 법제화돼 궤장의 규격까지 정해 놓았다.
하지만 초기에는 이것을 받은 사람이 드물고 후기에 와서야 이원익 이경석
허목 등이 궤장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임금이 70세 넘은 사람에게는 구장을, 80세 되는 이에게는 청려장을
하사했다.
비둘기처럼 음식을 부드럽게 넘기라는 뜻에서 비둘기를 새긴 것이 구장이고
짚처럼 가벼운데다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줄기가 지압효과를 준다해서 명아주
로 만든 것이 장수지팡이 청려장이라지만 장수를 비는 상징적 요소가 짙다.
정부가 엊그제 "노인의 날"을 맞아 백세노인 4백98명에게 청려장을 선물
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95년 김영삼정부에서도 명아주 지팡이를 선물한 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상징적이었던 탓인지 노인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정작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공원을 떠돌며 스스로 "노장무용론"을 되뇌지
않도록 해줄 교육프로그램, 복지시설 확충같은 실질적인 것이라는데...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