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가 겪은 IMF 사태는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IMF 사태는 뭐니뭐니 해도 우리가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그 문턱에서 미끄러져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경제적인 요인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정치 사회 또는 문화적인
요인으로도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 국민들의 얕은 질서의식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우리처럼 무질서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모두가 줄을 서서 조용하게 기다리는 편이지 무리하게 새치기를 하거나
조급하게 굴지 않는다.

자동차 운전은 더욱 그렇다.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난폭운전이나 불법운전 대신 양보운전 준법
운전의 안전문화가 교통질서를 바로 잡고 있다.

우리와 비교할 때 너무도 대조적이다.

우리의 질서 의식이 백년하청이라고 한다면 선진국되기는 글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해진다.

또 우리 국민의 정직성에도 문제가 있다.

얼마 전 고급 옷 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짜증스러워 했다.

네명의 사회지도층 인사의 부인들은 국회 청문회에 나와 대질 신문을 벌이는
순간까지도 서로 다른 말을 늘어 놓았다.

각자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으로 보면 거짓말을 할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
데도 말이다.

서로 하는 말이 다른 걸 보면 그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 것은 분명하다.

일반 국민들은 진실 규명을 하지 못한 데도 짜증이 나지만 그들의 거짓말
에도 큰 분노를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과거 20~30년전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면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쿠즈네츠(S Kuznetz)는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겪게 되는 장벽이 바로 국민들의 의식수준 문제
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발전을 통해 소득 수준을 높이는 일
못지않게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 가운데 국민소득을 높이는 일이 오히려 더 쉬울지 모른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힘을 합쳐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나간다면 생산과
수출이 늘고 국민소득도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말이 많을수록 일을 그르치게 될지도 모른다.

또 서두른다고 금방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히 해 나가야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갖가지 모순과
부조리를 찾아내 이들을 근원적으로 제거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운영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이다.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착실하게 실천에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렇게 나쁜 관행이나 의식들을 하나 둘씩 고쳐나가다 보면 국민 각자의
의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게 되고 선진화된 국민의식이 몸에 배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근본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다보면 교육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개혁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하는 것이고 개혁의 주체인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일은 교육이 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교육은 개혁의 시작이요,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교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학교 교육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자녀교육에 무관심한 아버지와 자녀의 적성을 무시한 채 어릴 적부터
팔방미인이 되기를 원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에게 학교 교육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기성세대와 사회지도층의 갖가지 비리와 불법적 행동이 연일 매스컴을 통해
적나라하게 전달되는 상황에서 학교 교육이 성과를 나타내기는 어렵다.

결국 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자면 올바른 가정 교육과 사회 교육이 선행
되어야 한다.

누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어 줄 것인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열심히 일해 소득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선진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과 의식 수준을 키워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서는 선진국이 되는 길은 요원한 일일
뿐이다.

이래저래 할 일이 참 많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