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 미국 MIT 교수 >

아시아 외환위기국들은 회복단계에 접어든 환자가 마치 다 나은 것처럼
안도하듯이 행동한다.

심지어 승리감에 도취해 있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은 분명 시기상조다.

가장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는 한국은 올해 5%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산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를 전망이다.

일본도 경기회복의 확실한 징후가 없다.

중국은 성장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금융시스템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아시아는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더욱이 다음의 위기를
어떻게 피할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방안도 찾지 못했다.

경제위기를 초래했던 취약점 중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한국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경제위기에서는 단기금융을
제공했던 외국은행들이 일제히 자금을 회수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 결과는 금융과 외환위기의 결합으로 나타났다.

환율폭락을 방치하면 인플레가 초래되고 달러로 차입한 기업들이 파산했다.

금리인상을 통해 환율을 방어하면 기업들의 채무부담과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아시아 경제위기가 악화될 때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다 이제 회복 기미가
보이자 서로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정책권고의 성공사례로 한국을 들고있다.

그러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훨씬 뒤처지고 있는 것이나 IMF의 도움을
거부하고 자본을 통제한 말레이시아의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국가들은 외면한 채 말레이시아의 경기회복을 순전히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IMF가 권고한 정책을 수용하거나 거부한
것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과연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완전"이란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있다.

회복이란 의미가 플러스 성장으로 복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반적으로 간주돼 온" 수준까지 올라서는 것이라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아시아 국가들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아시아에는 "서구적 의미"의 진정한 기업이 드물다.

외견상 현대적 기업처럼 보이는 것도 실제로는 비대 성장한 족벌회사에
불과하다.

폐허화된 은행부문의 개혁에서 일부 진전이 이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있다.

둘째 지금까지 아시아의 급속한 성장은 외국으로부터의 대규모 자본유입에
따른 것이었으며 앞으로는 위기이전과 같은 대규모 자본유입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투자자들의 이탈이 중단될 수 있으나 몇년전처럼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붓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1~2년간은 위기이전과 비슷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으나 그
이후로는 기대치보다 훨씬 낮아질 수 있다.

아시아의 회복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는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97~98년때와 같은 자금압박은 없을 것이다.

단기외채는 대부분 상환되고 대규모 무역흑자를 통해 외환보유고도 늘어난
상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이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제2의 아시아 경제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아시아 국가들은 좀더 튼튼한 경제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는가.

그 답은 분명히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는 정실자본주의를 억제시키고 "아시아적 가치"가 경제를
불사신으로 만들었다는 위험한 신념을 약화시켰다.

경제위기는 또 자유시장주의의 입장을 누그러뜨려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금융시장을 개방하라는 외부 압력을 덜 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부 아시아국가들 사이에 위험한 자기만족이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

지난 96년 멕시코가 경제위기에서 회복되기 시작했을 때 정책결정자와
투자자들은 한결같이 그 위기가 일과성이며 되풀이되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는 1년뒤에 나타난 아시아 위기에 대한 최종 연습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기상황이 장악된 것으로 믿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개혁안 수위도 훨씬 낮아지고 있다.

투자자와 해당 국가들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정도로 바보스러운 것인가.

물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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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폴 크루그먼 미국 MIT대 교수가 "아시아외환위기 2주년"을 맞아
시사 주간지 타임 최신호(21일자)에 기고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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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그먼 교수의 8가지 충고

1. 일본은 화폐발행을 늘리고 어느정도의 인플레는 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라.

2. 통화증가로 엔저현상이 초래될 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크게 동요하지
말라.

3. 모든 국가는 저금리를 유지하고 지출을 늘려라.

4. 경쟁력이 없는 일부 기업은 도태시켜라.

5. 외국은행을 유치하라.

6. 달러부채를 늘리는 기업을 견제하라

7.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의 정자본통제정책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8. 지난 96년 멕시코의 예를 기억하라.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