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속음식점 ''꽃피는 산골'' 시경호씨 ]

"어려운 시기지만 웃음꽃 대화꽃 활짝 피라고 꽃피는 산골이라는 이름을
지었지요"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에서 토속 음식점 "꽃피는 산골"을 운영하는
시경호(50)씨.

자그마한 몸이며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 곱고 여려 식당 카운터에 앉아있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안방마님 자리를 떨치고 나와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년전.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지난 95년1월 미국이민을 떠난 그는 낯선 이국땅에서
생전 처음으로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일하는 아주머니를 두명이나 두고 살던 그녀가 육체노동이란걸 처음 해본
것이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대견했어요. 내 손으로 돈을 벌다니요.
이때 돈버는 재미라는 걸 처음 알게됐죠"

미국 이민 1년만에 서울로 되돌아온 시씨는 우연히 강남구청 옆에 있는
조그만 칼국수집을 인수해 음식장사를 시작했다.

IMF체제가 터지기 직전까지 이곳에서 약 1년간 알뜰히 돈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 97년 가을 상권이 좋다는 선릉으로 진출했다.

창업비용은 임차 보증금 4천만원과 인테리어비와 주방설비비 2천만원을
합쳐 모두 6천만원이었다.

메뉴는 여전히 칼국수와 보쌈이었는데 장사가 신통치 않았다.

직장인들이 대개 아침을 굶고 출근하기 때문에 점심 메뉴로 칼국수를 꺼렸던
것이다.

서너달째 고전하던 시씨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메뉴도 바꾸고 2천만원을 들여 실내 인테리어도 다시 하고 간판도
바꿔달기로 작정했다.

"어려운 때 돈 들여 가게를 뜯어고친다니까 주변에서 말렸어요. 하지만 전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씨는 이때 가게이름을 꽃피는 산골이라고 새로 짓고 특색없던 가게에
테마를 도입키로 했다.

편안하고 친근한 토속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메뉴도 버섯전골 산채비빔밥등 분위기와 조화되는 것들을 추가했다.

결과는 대성공.

칼국수를 팔 때 8백만원수준이던 월 매출이 1천6백여만원으로늘었다.

음식장사인 만큼 맛에 쏟는 시씨의 정성은 각별하다.

잘한다는 음식점을 다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먹어본 것은 물론이고 똑같은
맛을 내기 위해 음식을 사다가 물에 담가놓고 풀어헤쳐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또 구수한 눌은밥을 만들기 위해 울산까지 가서 노하우를 배워오기도 했다.

꽃피는 산골의 인기메뉴는 콩비지와 버섯불고기전골.

콩비지는 1백% 조선콩을 갈아 만들어 맛이 구수하다.

버섯불고기전골은 국물맛이 시원해 간밤에 술 한잔 마신 직장인들의 해장
메뉴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손님들이 분위기가 편안하고 음식맛이 좋다고 해요. 저도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사람들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 어려운
시기에 돈도 벌고 인생공부도 하는 것같아 보람을 느껴요"

손님들을 보면서 돈 버는 일이며 남자들의 세계가 힘들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시씨.

인생의 고비를 맞아 시작한 장사지만 덕분에 성격도 밝아지고 몸도 건강해져
이젠 이 일터가 한없이 감사하고 소중하다며 밝게 웃었다.

(02)556-5514

< 서명림 기자 mr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