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는 것은 이미 4살 때
부터다.

왕자가 아닌 마거릿 공주가 태어나자 관심은 맏이인 엘리자베스에게 쏠렸다.

망아지를 탄 공주의 납인형이 등장하고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초콜릿
도자기 병원도 생겼다.

또 그의 초상을 인쇄한 6센트짜리 우표까지 발행됐다.

어린 공주는 어디서나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아버지 요크공이 조시6세로 즉위하면서 그는 열살에 정식으로 후계자가
된다.

조시6세의 대관식이 끝나 버킹엄궁으로 돌아갈 때 화이트 홀 옥상에 설치해
놓았던 음량계는 국왕과 왕비가 탄 마차가 지날 때(80dB)보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탄 마차가 지날 때(85dB) 환호성이 더 컸다는 흥미로운 기록을 남겨
놓았다.

1947년 그의 결혼식은 2차대전후 암울했던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활력소가
됐다.

이 "세기의 결혼"은 사상 처음 TV로 전세계에 생중계돼 모든 이들의 부러움
을 샀다.

53년 영국 46대왕(여왕으로는 6번째)으로 등극한 대관식 역시 전인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여왕은 지금도 여전히 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왕실의 권위를 지켜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스컴의 지나친 관심으로 사생활 침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대부분은
여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

연방이 아닌 외국에서도 여왕의 인기는 대단하다.

유럽의 다른 입헌군주국 왕이나 일본의 천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기작가 로버트 레이시는 그 이유를 수수께끼라면서 "여왕이 인간 가운데
가장 훌륭한 매력을 지난 동시에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인상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사사로운 감전을 억제하면서 성실하게 왕실의 법도를 몸에 익힌
탓으로 탁류에 물들지 않은 진선미의 상징처럼 추앙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대의 여왕을 첫대면한 80노구의 처칠수상이 "이제야 우리가 원했던 인물을
모시게 됐다"고 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깊은 의미를 함축한 말이었던 것
같다.

엘리자베스 2세와 부군 필립공이 국빈으로 오늘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평소 검소하기로 소문난 손님인 만큼 엉뚱한 곳에 병풍을 펼쳐 놓듯 소란
피우지 말고 정성껏 따뜻하게 맞았으면 한다.

과공은 비례라 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