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위기는 그 어떤 위기보다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치명적인
독성을 전염시켰다.

경제근간이 탄탄한 나라들조차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에대해 마틴 펠트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지
3-4월호에 기고한 "신흥시장 안정을 위한 세가지 조언"을 통해 개도국들이
스스로 금융 건전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금융계에는 급한 불을 진화해줄 "119구조대"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위기에 대비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 정리=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나라의 통화가치는 경상수지 불균형이나 금융시스템 마비같은 근본적
원인이 없더라도 폭락할 수 있다.

아시아 위기는 통화가치가 과대평가되어 있지 않더라도 지리적 요건이나
무역 패턴, 투자자들의 급작스런 포트폴리오 변경 등에 의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같은 요인들은 상호결합해 인플레를 촉발시키고 채무 부담을 가중시켜
결국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국가는 이같은 외부 압력으로부터도 통화
가치를 보호할 수 있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고 투기세력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금리를 인상해 환율을 방어하는 전통적인 통화 방어벽은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고 외자 이탈을 가속화시켜 증시를 붕괴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97년말 태국과 한국이 그랬다.

신흥시장은 유동성을 늘려 향후 통화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가지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단기 외채를 줄이고 외환보유액을 늘리며 담보부 융자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조치들에 따르는 비용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들이 환율변동의 위험을 그대로 떠안고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 위기는 일단 통화가치가 붕괴되면 그것을 수습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소에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는데 드는 비용을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3가지 조치를 적절히만 운용하면 시너지 효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단기외채 부담을 낮추라 = 신흥시장의 은행 기업 정부 등은 보통 단기
만기의 달러나 엔화를 빌린다.

장기로 돈을 들여오거나 자국 통화로 돈을 조달할때보다 금리부담이
적어서다.

그러나 위험도 그만큼 크다.

외국 채권자들은 채무국의 경제상황이 급변하거나 다른 기타 여건상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될때는 채무 갱신을 거부하기 쉽다.

작년 8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사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외환보유액에 비해 단기외채가 지나치게 많을 때는 97년말 한국처럼 통화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했을때 달러표시 부채는 기업부도 속출과 경제침체로
이어지곤 한다.

<> 외환보유고를 늘려라 = 한 나라가 유동성을 늘리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외화를 충분히 축적하는 것이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천4백억달러를 넘는다.

이는 국제투자자는 물론 중국 스스로에도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아도 될
여력이 있다는 신뢰를 심어줬다.

물론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적지 않다.

수출을 수입보다 늘리려면 국내소비나 투자를 줄여야 한다.

정부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국내에서 채권을 발행할 경우 이자부담이
커 그 돈을 미국의 30년물 장기채권에 투자하는 것보다 손해다.

또 무역흑자로 외화를 축적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실질 국내투자를 줄이지 않고도 외환보유액을 빨리 늘릴 길이
있다.

장기외채를 들여오고 이 돈을 유동성이 높은 국제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또 각국은 수입을 기준으로 외화보유고의 적정수준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통상 6개월치 수입량에 해당하는 외환보유를 목표로 세우지만 이는 외환
위기가 무역금융 문제가 아닌 자본이탈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개도국들은 외환보유 수준을 투기세력이 팔아치울 수 있는 자산규모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 담보부 융자제도를 만들어라 = 한 나라가 급전을 조달하는 능력은
사실상 그만큼의 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각국은 민간 부문에서 충분한 대출을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선진7개국(G7)이 위기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출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일리가 있다.

민간대출을 유지하고 신용을 제고할 수 있는 한가지 믿음직한 방법은
담보부 융자제도를 설립하는 것이다.

민간 대출을 지속할 수 있는 담보를 설정해 제공하는 것이다.

담보부 융자제도가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위기에 빠진 국가들은 그 담보를
배경으로 자유롭게 대출할 수 있다.

이자야 높겠지만 국가차입이 끊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한 나라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채권자들이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자산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가장 적절한 담보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달러가 될
것이다.

담보부 융자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신흥시장 정부와 외국 은행간에
자발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 세가지 방법을 통해 유동성을 증가시키는 것 외에도 경제통제나
통화보드제, 달러나 엔 블럭 형성도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결론적으로 신흥 경제권 국가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국의 금융 건전성을
조절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단기 외채 의존도를 낮추고 적절한 무역 수지를 유지하며 건전한 금융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IMF나 국제기관들이 최종 대부자로서의 역할을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유동성을 늘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