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진다.

부산의 한국선물거래소(KOFEX)가 이달 23일 문을 열 예정이다.

이때부터 환율 금리 금 등에 대한 선물거래(Futures Trading)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난 96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가지수선물거래가 도입된데 이어 환율과
금리가 더해져 금융의 3대 축이 모두 선물상품으로 거래된다.

금도 규격화돼 미리 사고 팔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제껏 금선물 거래를 하기 위해 미국및 일본시장에 굽혔던 자존심을 펴도
된다.

선물거래는 이미 현물거래를 넘어서 현대 금융의 총아로 떠올랐다.

지난해 세계 선물시장에서 거래된 규모는 돈으로 따져 대략 4백조달러.

전세계 2백여개 국가가 1년동안 생산한 부가가치 총량보다 10배 이상 많다.

시장개설 3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주가지수 선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주식시장을 통해 거래된 돈은 모두 1백92조원.

그러나 KOSPI200지수 선물에 사용된 돈은 모두 4백5조원이었다.

선물시장이 현물시장보다 2배나 큰 셈이다.

세계적으로 선물시장 규모가 현물시장 규모보다 크다보니 국내 선물업계가
부산의 선물거래소 개장에 거는 기대 역시 지대하다.

이종남 선물거래소 이사장은 "부산이 선물의 중심지로 발돋움해 서울의
현물시장과 함께 한국 금융의 또다른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제일선물의 김재근 사장은 "21세기에는 선물이 금융거래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선물시장 개설로 선진화된 금융기법이 속속 선보이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달 실시된 선물모의거래를 보면 선물업계의 이러한 바람이 결코 허황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5일부터 9일동안 진행된 모의거래에서 거래된 선물대금은
5백40조원.

거래량도 1백84만 계약에 달했다.

선물회사뿐 아니라 개인투자자 은행 투신 증권사등 각 투자주체들이 활발히
참가함으로써 11개 선물중개회사에 개설된 위탁계좌수는 2천2백29계약에
이르렀다.

모의거래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외국인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손상열 선물협회 부회장은 "지금까지 10여개 외국계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선물협회를 방문해 진행상황을 체크했다"며 "시장이 개설되면 대부분 참가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선물시장이 개설됨으로써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위험회피라는 수단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수출기업이 수출대금으로 6개월짜리 달러어음을 받았다고 치자.

6개월후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원화가치가 오르면) 환전을 통해 손에
쥐는 원화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선물거래를 통해 이를 헤지(Hedge.위험회피)하면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선물시장에서 손해를 만회할 수 있게 된다.

이승하 현대선물 부장은 "특히 중소기업들이 적은 비용으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게 바로 선물거래"라고 설명했다.

선물시장은 환율이나 금리등을 뒤섞은 파생금융상품으로 활용돼 금융기관
기업 개인투자자 모두에게 다양한 자금운용을 가능케 해준다.

개인들은 특히 주가지수선물에 이어 달러선물 금리선물등으로 투자수익을
노릴 수 있다.

이민자금 마련 및 유학자금 송금 등에도 선물시장이 활용될 수 있다.

선물시장이 활성화되면 외국자본 유치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외국인이 지금까지 한국 투자를 주저했던 이유중 하나가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환율변동에 따라 달러화로 계산해 축소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선물 옵션 등의 파생상품을 통해 헤지하는데 익숙한
외국인들은 원.달러 선물.옵션상품을 이용해 위험을 줄이고 투자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물시장 개설이 "장밋빛 기대"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 있는게 선물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최고은행 베어링이 파산하고 주인이 바뀐 것은 닉 리슨이란 한
딜러의 파생상품 투자실패 때문이었다.

국내의 경우도 SK증권이 파생금융상품에서 엄청난 손실을 봤으며 LG금속
이나 삼성엔지니어링 등도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 선물시장이 당장 활성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모의거래는 현금 거래가 수반되지 않은 것이어서 "거품"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9일동안의 1백84만 계약이 현실로 이어질지 단언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기관투자가들이 IMF체제이후 보수적인 자금운용에만 매달리고 있어 당장
적극적으로 참가하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제도적인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선물업계는 선물시장 활성화를 위해 선물투자 전용펀드 허용을 당국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미국의 CPO(선물기금 운용업자)와 같은 선물투자신탁회사 제도가 마련
되지 않았으며 증권투자 위주로 업무를 진행하는 투신사에만 이 업무를 준
것도 개정돼야 한다는 지적을 듣는다.

선물거래소 활성화를 위해 주가지수선물까지 부산으로 이관해야 할 것이냐
말아야 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도 분분하다.

선물거래소와 선물업계, 정책 및 감독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제때
시장을 개설 발전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박준동 기자 jdpow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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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거래 진화 ]

1. 현물거래 : 매입 및 매도자 당사자간 거래
2. 선도거래 : 당사자간 선물계약
3. 선물거래 : 거래소 매개로 한 선몰표준 계약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