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뒀던 작년 12월 22일을 법무법인 한미의 이미현
변호사(38)는 잊지 못한다.

지난 두달간 정신없이 바쁘게 만들었던 성업공사의 자산유동화증권 매각
건은 마무리 순간까지도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전화통을 붙잡고 밤을 꼬박 새면서 상대편 투자자인 미국의 론스타측과
네고를 해 기본계약서(엄브렐러 어그리먼트)를 만들어냈다.

계약행사가 오전 11시로 돼있었기 때문에 아침도 굶어가면서 최종문안을
점검했다.

행사시작 20분전인 오전 10시 40분, 성업공사측에서 급히 계약서 문안
일부를 고쳐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부랴부랴 내용을 수정한 뒤 계약행사가 열리는 은행연합회로 서류를 들고
뛰었다.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는 11시가 약간 넘어 있었다.

모두들 "살았다"하는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론스타의 존 P 그레이켄 사장과 성업공사의 문헌상 당시 사장이 넘겨받은
서류에 사인함으로써 계약이 체결됐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자산유동화증권이 매각되던 순간이다.

이로써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SPC(special purpose company,유동화회사)를
통해 매각하는 길이 처음 열렸다.

채권원금만 5천6백46억원이고 여기에 부동산 10여건을 합쳐 유동화증권을
발행, 매각금액이 총 2천12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거래였다.

성업공사의 자산유동화증권 매각은 부동산이나 채권 등 자산에 수십조원의
돈이 잠겨 곤경을 겪어 왔던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로서는 막혔던 숨통을
확 터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관련법령이 지난해 9월 입법된 직후여서 아무도 이런 거래를 해보지 않았던
터였다.

이 때문에 성업공사의 유동화증권 해외매각은 자산유동화의 모델로서 주목
받았다.

이 변호사는 94,95년 하버드대 유학시절 주택저당권부대출채권의 유동화
(MBS)를 포함한 자산유동화(ABS)에 대해 공부했던 이 방면의 전문가다.

두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투자자를 잡아 유동화증권 매각계약을 체결
하는데 성공했다.

대상물건이 우량채권이 아닌 부실채권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했던
전형적인 자산유동화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이 변호사는 투자자들을 사모방식으로 모집해 이들을 경쟁입찰시킴으로써
성업공사가 유리한 조건으로 채권과 부동산을 매각할 수 있도록 손을 썼다.

이 변호사는 "국내법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는 부분이 많아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초이자 최대인 유동화증권 해외매각을 거뜬히
치러냈다.

지난해말 국내에서 최초로 발행된 동양카드의 유동화증권도 이 변호사가
맡았다.

동양카드가 오리온유동화전문회사를 통해 2천5백억원 규모의 유동화증권을
발행, 매각하는 과정을 이끌었던 것.

현재 동양종금의 리스채권을 유동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우할부금융의 자산유동화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에게 유동화문의가 쇄도하면서 미개척인 자산유동화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이 변호사는 자동차할부금융채권, 주택저당채권, 리스채권 등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이 시장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평가
한다.

한번 발행했다 하면 수천억원대라는 것이다.

83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6기.

87년 동서종합법률사무소(현재 법무법인 광장)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
했으며 90년 한미에 합류했다.

하버드에서 법학석사를 마치고 시카고의 러드닉&울프에서 잠시 근무했다.

항공기금융, 프로젝트 파이낸싱, 각종 연불수출금융 등 첨단기법의 금융거래
를 다양하게 취급해 왔다.

스스로 덜렁댄다고 할 정도로 활달하다.

신출내기 변호사 시절 하루 먼저 법정에 나가서 재판을 기다렸던 적도 있을
정도로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한번 맘먹고 챙기기 시작하면 상대방을 두손 번쩍 들게 만든다.

남편 신동승씨(39)는 서울고법소속 판사로 헌재연구관 파견근무중이다.

< 채자영 기자 jychai@ >

[ 특별취재팀 = 최필규(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
(산업1부) 김문권 류성 이심기(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