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사법시험 면접위원으로 위촉돼 40명의 수험생을 면접했다.

검찰을 지망하겠다는 수험생들에게는 검찰청법에 규정돼 있는 검사동일체
원칙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답이 천편일률적이고 정답을 말하는 수험생이 한사람도
없었다.

"검사가 돼 어떤 사건을 수사한 결과 혐의가 없어 불기소처분 의견으로
결재를 올렸는데 상사가 기소하라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사를 설득해 제 의견을 관철시키겠습니다"

"상사가 설득이 안된다는 말이네. 그가 끝까지 고집해 결재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해 보세. 이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겠나"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사표를 내겠습니다"

이 경우 검찰청법에 의하면 상사는 자신이 그 사건을 직접 처리하던가
아니면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케 하는 길이 열려있다.

따라서 주임검사는 상사에게 사건을 재배당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상사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검사는 견해의 차이가 증거에 대한 평가나 법적용 문제와 같은 순수한
법적판단의 이유라면 굳이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고해 사표까지 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사의 견해가 부당한 압력이나 회유-그런일은 없겠지만-에 의한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 경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나 또한 무소신의 맹종형 부하보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소신형 부하를 사랑한다.

문제는 그 소신 못지않게 상사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와 균형
감각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수험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가서 다시 공부하게. 사표는 검사 생활중 딱 한번만 내는 것이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