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재야에서도 "별"들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그는 신정부 출범 당시 한국은행 총재자리란 정부의 유혹을 뿌리치고
아웃사이더로 남아 정부와 재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현 경제팀으로는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해 관가에
파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지난 86년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 발표를 주도하며 현실비판 의식을
실천으로 옮긴 이래 정부 정책에 대해 맹공을 퍼부어 왔다.

"개혁적 케인즈주의자"를 차저하는 그의 목소리엔 김대중 대통령도 귀를
기울일 정도다.

일부에선 정 교수를 두고 김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김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감시 활동을 펴는데 시민단체에서도 스타들이 배출됐다.

이중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최대의 샛별로 꼽힌다.

그는 참여연대의 경제민주화위원회를 이끌며 SK텔레콤 삼성그룹 등 대기업
을 상대로 잇따라 승전보를 울렸다.

특히 지난해 제일은행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기업 부실경영에 대한 첫
배상판결이란 업적을 남기며 "소액주주운동의 대부"란 명성을 얻었다.

반면 재벌기업이나 부실은행 경영진에겐 "저승사자"로 지목됐다.

장 교수는 아시아판 비즈니스위크지가 지난해 선정한 "아시아를 변화시키고
있는 50인" 대열에 김대중 대통령, 유종근 전북지사, 김정태 주택은행장
(당시 동원증권사장) 등과 함께 오르기도 했다.

그는 장영식 한국전력 사장과 장재식 국민회의 의원 형제의 친조카다.

유종성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도 국내 시민단체의 간판격인 경실련
을 이끌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으로 세차례 옥고를 치른뒤 90년말 서경석 목사
와의 인연으로 경실련에서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지난 97년 "김현철 테이프 파동"으로 경실련이 최대의 위기에 빠진 상황
에서 사무총장 자리에 올라 경실련의 위상을 되찾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최근 대필사건으로 경실련 내홍을 겪기도 했지만 지난 6일 총회에서
사무총장으로 재임돼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유종근 전북지사의 친동생이다.

<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