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에 있는 한국전력 한 변전소에서 근무하는 최과장(49).

정년까지는 6년 남짓 남았지만 지난달 실시됐던 희망퇴직 신청때 퇴직신청서
를 냈다.

사표는 12월17일 정식 수리될 예정이다.

그러면 최 과장은 고등학교 졸업후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게
된다.

최 과장의 사표는 물론 1백% 자의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에 다닌다며 그동안 무척이나 그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한전이 본격적인 인력감축에 나서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이 마련된 이후 본격화된 덩치 줄이기 회오리를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다른 직원들보다 뚜렷한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무작정 버티다간
불이익을 당할 게 불보듯 뻔했다.

회사는 "비전없는 직원에게 보직은 없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퇴직금이
크게 줄어든다"며 퇴직을 유도했다.

결국 떠밀리듯 퇴직을 신청했다.

12월 한시퇴직에 손을 든 직원들은 최 과장을 포함, 무려 2천2백40명이나
된다.

IMF 관리체제는 "안전지대"였던 공기업들을 구조조정의 회오리속으로 몰아
넣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뼈를 깎는 고통도 강요했다.

그러나 IMF가 아니더라도 비효율과 저생산성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공기업
들로선 언젠간 한번은 치러야 할 고통이었다.

공기업들의 구조조정은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인력과 직제를 줄여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예 민영화
함으로써 경영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올해 19개 공기업에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인력은 모두 1만6백14명.

군살 제거작업을 이끌고 있는 기획예산위원회가 이들 공기업과 협의를 거쳐
수립한 조정 목표인원이다.

지난 3월말현재 해당 공기업 총정원 14만3천63명의 7.4%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가운데 10월말까지 감축대상의 88.1%에 해당하는 9천3백56명이 정리됐다.

공기업 인력감축은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

오는 2001년까지 단계적으로 총정원의 21%인 3만2백49명을 줄이도록 돼
있다.

일단 취직만 하면 퇴직때까지 신분을 보장받는 "철밥그릇"이 더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가스공사를 비롯해 11개 공기업이 올해 계획된 인력조정을 마쳤다.

한전도 다음달 17일 퇴직처리를 마무리하면 목표 초과달성이다.

나머지 실적이 뒤처지는 곳들도 조만간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인력감축과 함께 직제들도 대폭 축소됐다.

공기업들은 말그대로 슬림경영 토대를 구축하느라 한창이다.

인력과 직제 조정이 군살빼기 정도라면 민영화는 공기업의 골격 자체를
바꾸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민영화가 초래하는 변화의 폭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남해화학은 이미 지난 9월말 3천억원에 농협으로 넘어가 민영화가 됐다.

국정교과서는 11월초 4백47억원에 주인이 대한교과서로 바뀌었다.

한국종합기술금융 한국종합화학 한국중공업도 조만간 매각될 처지에 놓여
있다.

종합기술금융은 외국회사를 대상으로 한 1차 입찰에서 원매자가 나서지
않아 곧 2차 입찰에 부쳐진다.

한국종합화학과 한국중공업은 올해중 입찰공고가 날 전망이다.

국제경쟁입찰로 매각되는 이들 3개 공기업이 외국기업으로 넘어갈 경우
다른 곳보다 심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경영 효율성을 중시하는 외국인들이 경영권 인수후 큰폭의 물갈이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재정이나 외화확보 차원에서 부분 민영화가 추진되는 공기업들도 절차가
진행중이다.

올해중 지분 5%를 DR(주식예탁증서)방식으로 해외에 매각하는 한전은 현대
증권 살로먼스미스바니 ING베어링을 주간사로 지정했다.

다음달부터 해외에서 매각 설명회를 갖게 된다.

한전은 또 내년에 화력발전소 두곳을 팔기로 하고 대상 선정작업을 진행중
이다.

포철은 3.14%의 지분을 살로먼스미스바니 메릴린치 동원증권 등을 통해
다음달중 해외DR 형태로 내다판다.

한국통신은 주간사가 워낙 낮은 가격을 제시해 일정을 다소 늦춘 상태다.

전략적 제휴로 15%, 해외DR로 10%를 각각 팔기로 이미 방침을 정했다.

가스공사는 올해중 1천억원, 내년중 1천5백억원을 증자, 재무구조를 탄탄히
만든 뒤 지분매각에 나선다.

2002년까지는 완전 민영화된다.

물론 현재 추진중인 민영화가 공기업 개혁의 정답일 수는 없다.

적지않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겉치레로 바뀌는 시늉만 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다.

공기업들은 올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실제 고용인원이 아닌 직제상 정원
기준으로 감축규모를 기획위에 제출했다.

따라서 실제 구조조정 인원과 숫자상 인원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 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