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25년.

은혼식을 맞은 어느 주부가 남편으로부터 은색의 자동차를 선물받고서
그 감회를 적은 수필을 읽은 기억이 있다.

"공장에서 임시 번호판을 달고 달려온 차가 마치 싱싱한 생선처럼 새 차
냄새를 풍기며 차고에 있다.

먼길을 달려오느라 조금은 피곤한 듯 고운 먼지를 쓰고 있지만 몸체에서
내는 은비색은 나의 마음을 여러가지 상념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한 남자를 만나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 온 그녀의 25년은 때로 기쁨과
때로 슬픔으로 이어진 감회어린 시간이었을 것이고 그런 아내를 위해 남편은
은빛 자동차를 선물한 것이었다.

마침 남편이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해 온 사람이었는데 어쩌면
자동차와 함께 살아 온 특유의 감각이 "은혼식 날 은빛의 차"를 선택하여
아내를 감동시킨 밑거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은빛 날개를 단 듯한 기쁨, 그것은 분명 "참 행복"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자기 삶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한다.

첫번째는 어떻게 사느냐다.

사람은 나름대로의 성격대로 그리고 그 성격에서 비롯된 생활 습관 속에서
살아간다.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은 우리 세대에게는 지금의 삶이 예전보다 경제적
으로 나아졌다는 사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와 닿기도
한다.

두번째는 누구와 함께 사느냐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 생활의 절반 이상은 회사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하니까 나는 한 직장의 구성원들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세번째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다.

첫번째 두번째와는 달리 세번째 항목은 그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면서 보다
인간다워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톨스토이도 인간의 참된 생활은 동물적 자아가 부정되고 이성적 이식의
눈을 뜨게 될때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년이면 우리 부부능 결혼한지 30년이 된다.

돌이켜 보면 주변을 여유롭게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숨차게 살아온 것
같다.

"어떻게" "누구와 함께"그리고 "무엇을 위해"살아 온 것인지 이제 담담히
되돌아 보는 여유를 갖고 싶다.

물론 사랑하는 30년 동반자와 함께 그것이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자문하는 일이 될 것이요.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지를 정리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30년이 되는 내년에는 나도 아내에게 어떤 색의 차가 제일 갖고
싶으냐고 물어보아야겠다.

아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결혼 30년은 무슨 빛깔일까.

< sjkim@hyundai-motor.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