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 소설가 >

우선 날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1998년 서울 경기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게릴라성 폭우를 아직도
어떤 전설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 해는 정말 끔찍하게 비가 내렸다.

물론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 이후에도 2019년까지 가끔 그렇게 수마가
한반도를 찾아오곤 했다.

중국 대륙에서 발달한 구름대가 서해를 지나 한반도로 건너오거나 때로는
태풍과 함께 남쪽에서 그것이 북상하곤 했다.

그것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5년 오늘날, 이제 이 땅엔 예전 같은 장대비의 폭우는 내리지
않는다.

산이 무너지고 가옥이 물에 잠기는 침수 사태 또한 오래된 기록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옛일이 되고 말았다.

정확하게 2020년부터의 일이다.

중국 대륙에서 발달한 구름대이든 아니면 태풍을 따라 북상하는 구름대이든
그것은 이제 우리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게 된 것이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정확한 기상관측으로 그런 폭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첨단의 방식인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이제 인간의 과학은 그것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양쯔강 상공을 타고 중국 대륙에서 몰려오는 비구름대는 이제 그 세력을
한반도로 확장할 사이도 없이 서해 먼바다 상공에서 바로 비를 뿌리게 된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기류를 바꾸기도 하고 기압골 형성을 이동시키거나 무력화
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쪽에서 태풍을 타고 북상하는 구름대 역시 제주 먼 바다 앞에서 같은
방식으로 공해상에 비를 뿌리게 하는 방식으로 차단된다.

그러니까 한반도 상공엔 농작물 재배나 지표면과 대기중 온도 조절을 위한
필요한 양만큼의 비만 뿌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일이지만 지금 세계 기상학자들은 북대서양 상공의
구름대를 아프리카 사하라로 이동시켜 그곳을 1만년 전과 마찬가지의 녹색
사하라로 만드는 세계적 프로젝트를 이미 추진하고 있다.

아마 2050년께면 사하라 역시 아프리카의 새로운 곡창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의 이런 발전은 기상에서뿐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20세기 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눈부신 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20세기 말과 비교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교통의 발달과 통신 수단의
발달이다.

2010년부터 서울 거리를 누비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전기 축전지를 통해
동력을 얻는 전기 자동차이거나 태양열을 이용해 동력을 얻어 운행하는
태양열 자동차들이다.

전기 자동차의 경우는 1주일에 한 번이나 열흘에 한 번쯤 축전소(예전의
주유소쯤 되겠다)에 가서 축전을 해야 하지만 태양열 자동차는 그런
번거로움이 없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번거로운 일들을 딱 질색으로 여긴다.

그러나 태양열 자동차는 전기를 이용한 배터리 자동차보다 값도 비싸고
가끔 집광판의 고장으로 길에 멈춰서는 경우도 있어 아직 서민들은 전기
축전 자동차를 이용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역시 10년 안으로 모두 태양열 자동차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태양열 자동차의 경우 10년 전 실험 단계 때만 해도 지붕 위에 커다란
집광판의 날개를 달아야 했으나 지금은 보닛 위에 장착된 집광판에서 얻는
태양열의 힘만으로도 시속 2백5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항공기 역시 2005년부터 태양열 비행기의 연구 단계에 들어갔다.

물론 그 연구는 20세기말부터 이미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특수 목적의
비행기들뿐만 아니라 모든 민항기와 군용 전투기들에 이르기까지 태양열
비행기의 일반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한때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던 로켓 역시 이제는 태양열 로켓이 그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예전의 인공 위성의 경우 대기권 바깥 부분에 그 위치를 잡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썩 아래에 위치를 잡을 수 있어 각종 통신 시설들과 방송 시설들이
더 고른 전파와 더 선명한 화면을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쏘아올리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이나 과학의 발전보다 더 크고 중요하게 변화된 것은
우리 국민 의식의 발전이다.

2025년 현재, 여름이면 어른들이 가끔 1998년의 게릴라성 폭우를 어떤
악몽처럼 떠올리듯 그 세기말에 시작된 또 하나의 악몽 같았던 IMF관리체제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는 그때 나라가 끝장나는 줄 알았다"

50대 중반의 장년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참으로 불우한 젊은 시절을 견뎌냈노라고.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대학 졸업과 함께 직장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사실 그 책임은 그들의 선배, 혹은 부모 세대들이 져야 할 책임이었다.

물론 그들 선배나 부모 세대들도 열심히 일하기는 했다.

어쩌면 가장 열심히 일했고 가장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았다는 누명까지 쓴 세대들인지 모른다.

열심히 일했지만 참으로 결과는 나빴다.

정확하게 28년 전 그 세기말을 게릴라성 폭우처럼 휩쓸고 지나간 독약 같은
거품이 있었다.

후일 경제학자들은 그 거품을 면밀히 분석했다.

많은 이유가 있는 듯했지만 그러나 가장 큰 독약은 두 가지였다.

탐욕과 무원칙.

그것이 지난 세기말을 휩쓴 거품의 독약이었다.

처음엔 그 사회적 독약을 "다시 뛰자"는 운동으로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결될 독약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미 물질만능에 깊이 중독되었으며 부정과 부패가 남들보다
부유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지름길처럼 여겨졌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총체적으로 나라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었다.

그런 마당에 "다시 뛰자"는 운동은 조금도 그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시 뛰어봐야 또 전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부정과 부패를
생각했다.

남보다 더 큰 탐욕으로 남보다 더 많은 부정과 더 많은 부패를 저지르는
자가 여전히 잘 살 수 있는 구조에서 단순히 "다시 뛰자"는 말은 "전처럼
뛰자"는 말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21세기가 시작될 때, 그 새로운 세기로서뿐 아니라 또 하나의
천년이 시작되는 그 밀레니엄의 첫걸음 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민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새로운 운동도 아니었다.

구호 역시 아주 새롭지도 않았다.

"새로 뛰자"는 구호 앞에 "전과는 다르게" 라는 구호가 붙은 것이다.

그러니까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뛰자"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처럼은 아무리 뛰어봐도 결국은 또 한 번의 총체적 부정과 부패의 늪 속에
빠져들고 말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원칙이 통하고 결국은 원칙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운동이
2000년의 시작과 함께 일기 시작한 것이었다.

온 국민의 집단 히스테리와도 같은 IMF현상 역시 그 운동 5년만에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채권국으로서의 발돋움 역시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21세기의 4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국민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몇 가지가 있기는 했다.

길거리에서 난폭운전을 하거나 질서를 무시하고 얌체처럼 끼여들기를 하는
운전자를 보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정치를 해야 할 놈이군" 혹은 "국회로 보내야 할 놈이군" 그 말은 감옥으로
가야 할 놈이군, 하는 말만큼이나 수치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뛰자"는 운동 속에 유독
변하지 않고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어쩌면 전보다 더 나쁘고도 심한
방식으로 새로 뛰는 그룹이 바로 정치인이라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15일 해방 80주년과 건국 77주년을 맞아 어느 신문사에서
국민 의식구조를 조사했는데 가장 믿지 못할 집단으로 30년 연속 여전히
정치인이 그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는 집단으로는 정부관리,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는 집단으로는 대학교수가 꼽혔다.

그러나 크게 놀랄 일도 아닌 것이 일찍이 20세기 말에 우리는 이미 그
조짐을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21세기의 국민에게 20세기의 빈대처럼 붙어 피를 빨며 기생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그러면서도 나라가 예전의 국난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미
그 시절부터 국민들 모두 그 빈대같은 족속들에 대해 그들은 원래 천성이
그렇거니 하고 제쳐놓은 때문이라는 걸 그들 자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적 연구 대상 중의 하나가 바로 그들인 것이다.

[[ 약력 ]]

<>58년생
<>강원대 경영학과 졸업
<>88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
<>96년 동인문학상, 97년 현대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창작집 "말을 찾아서" 등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