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프트웨어(SW)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려온 한글과 컴퓨터(한컴)가
핵심사업을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MS)에 사실상 매각했다는 소식은 국내
SW업계는 물론 사용자들에게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IMF관리경제라는 특수상황에서 보면 외국인 투자유치는 필수적이며
특히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의 경우 이것저것 가릴 입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컴이 MS로부터 고작 1천만~2천만달러를 끌어들이는 조건으로
지분 20%를 내주고 국내 워드시장의 대명사격인 "아래아 한글" 사업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한국 벤처기업의 앞날을 생각할 때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컴의 이찬진 사장에게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칭호를 가져다준 아래아
한글은 그동안 외국 워드제품으로부터 국내시장을 지켜온 국산SW의 자존심
이었다.

세계 워드시장을 석권한 MS가 한국시장 공략에 실패한 것도 아래아 한글이
폭넓은 수요기반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MS는 이번 거래로 약 1백억원 규모에 이르는 한글워드시장을 사실상
독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한컴의 몰락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는 관련업계의 자조적 반응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몇가지 값비싼 교훈을 준다.

무엇보다도 기술개발을 게을리하는 벤처기업은 하루아침에 도태되고 만다는
점이다.

이 사장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한컴은 이 사장의 "정치외도"로 경영을
소홀히해온 감이 없지 않다.

사용자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고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된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초반의 성공에 안주해 벤처정신이 퇴색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술개발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이찬진 신화"의 붕괴 원인은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불법복제풍토에
서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신제품을 내놓기가 무섭게 시중에 불법복제품이 나돌고 SW사용자 10명
가운데 7명이 정품보다는 복제품을 쓰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힘들여 기술
개발을 하려 하겠는가.

아래아 한글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불법복제를 당연시했던
소비자 풍토에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획기적인 저작권 보호대책없이는 벤처기업이 제대로 자랄 수 없음을 이번
한컴의 몰락은 입증해준다.

한컴과 MS간의 거래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양사간 계약조건이 특정사업
포기를 조건으로 지분을 인수하는 불공정행위에 해당되는지의 여부를 검토중
이라고 들린다.

엄정한 검토 결과가 주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MS사의 "자본의 논리"에 맹목적인 반감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벤처기업 하나 지킬 수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우리측의 책임이고
우리의 경제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민.관 모두가 제2의 이찬진 신화를 일궈낸다는 정신으로
국내 SW산업의 환경을 정비하고 활로를 개척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