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위기는 각국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라기 보다는 채권국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에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책임분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국제결제은행(BIS)이 8일
연례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BIS는 또 "아시아 위기는 전세계적인 금융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증명했다"면서 "보다 강력한 국제금융시스템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위기의 원인과 유사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BIS가 밝힌 98년
연례보고서의 주요내용을 소개한다.

< 정리=정종태 기자 jt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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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는 많은 문제가 거론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음 네가지가 아시아를 위기로 몰아넣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과다한 여신 증가 <>금융감독미흡 <>자산가치의 거품화 <>경직된 환율
체계가 그것이다.

아시아 국가의 금융기관이 민간 부문에 제공한 신용규모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97년의 경우 각국별로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7-8%에 달하고 있다.

문제는 신용증가율 자체보다도 신용가운데 상당부분이 기업에 대한 부실
대출로 쓰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간에 특혜시비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곧 금융기관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역작용을 일으켰다.

요컨대 정부의 철저하지 못한 금융감독에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것이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낙후된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다.

많은 은행들이 과다한 부실대출에 따른 금융부담을 안고 쓰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를 감독할 기능이 없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부동산과 주식 등 실물자산의 버블도 아시아 위기를 악화시키는
잠재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 기초체력에 걸맞지 않게 고평가된 통화가치, 이를 무리하게 방어하려는
환율체계도 문제였다.

따라서 아시아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핵폭발처럼 터진게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낸 산물이다.

이같은 아시아 위기는 어떤 암시를 던져주고 있는가.

무엇보다 아시아 위기는 2차대전 이후 지속된 자본의 흐름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즉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은행이 원천적인 채권자가 된데 반해 민간 부문은
주요 채무자로 전락했음을 확연히 보여준 케이스다.

따라서 국제 여.수신의 책임 문제가 과거와는 패턴을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같은 자본흐름의 패턴변화는 도덕적 해이를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제는 자본이동 규모가 너무 커져 공공 부문만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확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선 보다 효율적인 책임분담이 요구된다.

아시아 위기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해당국 정부와 국제금융기관의 노력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신용을 공여한 채권국 금융기관들도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위기는 또한 강력한 국제금융시스템의 실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국제금융체계의 개혁에 관한 무수한 논의가
진행돼 왔다.

아시아 위기에 대한 책임이 이를 미리 예견하고 방어하지 못한 국제금융
체계에 상당부분 있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이와관련, 최근 워싱턴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서 국제금융체계 개혁
방안으로 시장의 투명성및 자료공개 확대, 금융감독 기능 강화, 국제금융
기관들의 역할 제고, 민간 채권자들의 책임확대 등을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
한 논의였다.

아시아 위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금융및 민간기업
부문의 불투명성이다.

국제금융기관들은 하나같이 아시아 위기는 투명하지 못한 사업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

정부의 입김에 쉽게 좌우되는 금융기관의 대출관행, 기업들의 깨끗하지 못한
사업확장정책 등은 아시아 국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들이다.

이른바 정실자본주의(Crony-Capitalism)란 용어는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진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 이같은 후진적 관행을 얼마나 빨리 청산하느냐에 그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

한편 아시아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금융기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금융의 국제화로 인한 갖가지 위험을 미연에 방지시킬 수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인식의 보편화다.

파생금융상품을 통한 국제 금융거래규모는 지난해의 경우 전년도보다
11%정도 증가한 3백57조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만약 아시아 국가들이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해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피했더라면 지금의 통화위기는 빗겨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가 과연 언제쯤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답이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도 아시아 경제는 "또다른 위기"를 내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외환위기가 1차적으로 발생한 지역(인도네시아 한국 태국 등)에서는 경제가
점차 회복되는 징후들이 조금씩 보이지만 기타국들에서의 위기는 상존하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을 누려온 말레이시아와 홍콩 경제가 최근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거대경제권인 일본과 중국이 던져주고 있는 불안감도 만만치 않다.

결국 문제는 외환위기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개별국가 차원이
아닌 국제적인 공동노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