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청백리 등급을 세가지로 나누어 놓았다.

최상급은 재임중 자기의 봉록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고 퇴임할 때는 남은
재물을 그대로 두고 가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봉록외에도 명목이 정당한 것만 받고 남은 재물을 집으로 실어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최하급은 이미 관례가 돼있는 것이라면 비록 명목이 정당하지
못하다해도 받지만 스스로 나쁜 관례가 될만한 것을 만들지는 않는 사람이다.

다산의 이런 생각은 지붕에서 비가 새도, 끼니를 이어갈 양식이나 땔감이
없어도 "청렴"만을 고집했던 전통적 청렴관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다산보다 한 세대쯤 뒤인 혜강 최한기는 "인정"에서 "청렴"을 네가지로
분류했다.

윗 사람의 하사품이나 아랫사람의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은 염결이고, 많이
취할 수 있는 재물을 조금 취해서 자신의 이익을 남긴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겸양의 기풍을 세우는 것을 청렴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전의 청백리는 탐욕스러운 사회풍조에 사표가 되는 도렴이라고
구분해서 불렀다.

또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딛고 일어서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것을
염덕이라고 분류했다.

혜강은 특히 "고결한 것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사회의 사표는 되지만
공직자로서 천거할 적임자는 못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처럼 시대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청렴"에 대한 관념도 크게 바뀌어왔다.

지금 국민들은 공직자들이 옛날의 청백리같아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신규, 퇴직 고위공직자 1백30여명의 재산등록 내용
및 변동사항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실명제가 유명무실하게 됐고 무기명 채권발행도 허용된 판에 재산을
얼마나 성실하게 신고하고 실사했는지 의심스럽지만 너무 많은 재산을
보는 국민들의 눈은 역시 그다지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중에는 2년새에 재산이 15억원이나 늘어난 장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재산이 많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