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연금개혁의 공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넘겼다. “정부·여당이 결단만 하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연금개혁안이 처리될 수 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할 용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연금개혁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할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여야가 소득대체율 1%포인트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대체율 45%가 정부안?

이재명 "연금개혁 영수회담 하자"…국민의힘 "국회 무시한 정치공세"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에 “민주당은 조속한 개혁안 처리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당초 제시한 50%에서 45%로 낮추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며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 방안은 윤석열 정부가 제시했던 안”이라고 썼다. 연금특위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도 기자들에게 “정부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이 수치를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즉각 반박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수치를 제시한 적이 없고 이 안은 민주당의 제안”이라며 “민주당 주장을 민주당 대표가 수용한다는 것은 궤변”이라고 했다. ‘마치 정부·여당 때문에 개혁이 불발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여당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를, 야당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를 제안하고 협상을 벌여왔다. 특위 여당 간사인 유경준 의원은 지난 10일 소득대체율 44%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45%를 고수해왔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5%를 주장한 적이 없는 셈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회 연금개혁특위 논의 과정에서 정부는 안을 제시한 적도 없고, 그럴 권한도 없다”고 했다.

○與 “野 주장은 ‘국회 패싱’”

국민의힘은 이날 이 대표의 연금개혁 언급에 대해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합의 없이 강행 처리하는 데 대한 명분을 쌓으려는 정략”이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4% 수정안을 공식적으로 제안했음에도 민주당이 국회를 무시하고 영수회담 운운하며 정치 공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절차대로 여야 간사가 합의한 뒤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해 본회의에 회부하면 될 일을 윤 대통령을 끌어들여 논점을 흐리고 있다는 얘기다.

유 의원에 따르면 김성주 의원은 전날 유 의원에게 “소득대체율 44%를 민주당이 수용하면 합의할 것이냐”고 물었고, 유 의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당 간사가 합의해도 윤 대통령의 수용 표명이 없으면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국회가 내린 결론을 윤 대통령이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지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물밑에서 44% 절충안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라 막판 합의 가능성이 살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의도는?

이 대표가 이날 윤 대통령에게 연금개혁을 다룰 ‘원포인트’ 영수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은 연금개혁이라는 국가 아젠다를 자신이 주도한다는 이미지를 심는 한편, 21대 국회에서의 합의 실패 책임을 정부·여당에 떠넘기려는 복합적인 의도가 깔린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연금개혁 문제를 놓고 윤 대통령과 머리를 맞댈 경우 이 대표는 제1야당 당수로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을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미 “22대 국회에서 차분히 논의하자”고 제안한 상황에서 영수회담을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기존 입장과 다를 바 없는 ‘소득대체율 45%’를 “대승적 결단”이라며 정부·여당에 수용할 것을 압박했다.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취하면서 ‘이마저도 정부·여당이 걷어찼다’는 이미지를 씌우려 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연금개혁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영수회담을 거론하며 압박하는 것은 또 다른 거부권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설지연/한재영/양길성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