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승 <노동연구원 연구조정실장>

노사정위원회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지난달 15일 출범하였다.

출범당시에는 성공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으나 제1차 합의문을 5일만에
도출해내면서 국민적 기대와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외채협상개시 하루전에 제1차 합의문을 극적으로 도출하여
뉴욕협상단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었다.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92~93년 시도했던 사회적 합의형성을 위한 시도와
달리 성공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게 가지고 있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분명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째 이 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정치집단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개혁의지가
강하고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

노사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대타협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추진주체의 객관적 중립성과 신뢰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둘째 현재의 노사정위원회에는 재경원 부총리, 노동부장관, 양대
노총위원장 그리고 재계 등 경제3주체의 대표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

이와같은 인적구성은 위원회의 결정사항이 곧바로 제도화와 정책화로
이행될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무게와 힘이 실려질 수 있다.

셋째 이 위원회는 벼랑끝에 몰린 한국경제위기를 극복해 줄수 있는
구원투수로 등장했다는 상황적 조건을 간과할수 없다.

이와같은 절박한 위기상황은 참여 집단을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집단
이기주의에 함몰하는 우를 불식시켜 줄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노사정위원회의 세가지 희망적 조건은 본래의 모형과 부합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사정위원회는 원래 서구의 사회적 합의주의(corporatism)모형을 실행하기
위한 구성체로 출발하였다.

선진 노사관계의 모형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가 유럽에서
뿌리를 내릴수 있었던 것은 노조와 두터운 신뢰관계를 갖는 정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독일 덴마크 등 사회적 합의주의가 처음 대두된 배경을 보면
사회민주당이 집권하였거나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총리가 참여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동등위원회(Paritatische
Kommission)의 경우와 같이 한결같이 국정 최고책임자가 이들 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음도 특이할 만하다.

노사정위원회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도 경제위기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이 1967년에 전후 최악의 인플레이션 시기에 협조행동모형
(Konzertierte Aktion)을 조직한 것이나 보다 최근에 독일통일 이후
구동독 경제붕괴시에 연대협정(Solidarpakt)을 시도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건국이래 최악의 경제국난을 경험하고 있는것과,
노동조합과 가장 가까운 대화를 나눌수있는 정당이 집권하게 됐음은 서구의
경험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좋은 조건아래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순항을 거듭하다가
다소의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어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뉴욕협상으로 끝난 것이 절대 아니며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노사정위원회가 파국을 보인다면 외국의 신용평가회사나 외국
채권단이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대해 부정적반응을 보일 것이 분명하며,
외국자금의 원활한 유입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라 하겠다.

IMF와 외국 채권단의 눈에는 IMF구제금융 이후 구조조정이 진전된 것이
없다고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2월 한달에 한국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직시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 3주체는 제1차 합의문에 서명을
한 이상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

이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하기 위해 3자가 공정하게 고통분담을
해야 하고 상호 공동노력해야 하는 국민적 의무를 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분명한 과실도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훌륭한 조정자로서 자리매김되고 근로자는 고용안정을 도모하며
사측은 기업회생을 기대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본시 교환이론에 입각한 협상의 산물이다.

참여하는 주체가 한발짝씩 서로 양보하여 모두가 승리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근본이다.

그러기에 사회적합의주의에는 완전한 승리와 패배가 없는 공존의 논리가
성립되며 민주적인 타협만이 존재하게 된다.

노사정위원회가 노사 대타협을 이끌어내 경제난국을 타개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민주화와 산업 민주주의를 동시에 실현하는 구심체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