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아파트 내장형(빌트인) 가구시장에서 담합에 가담한 현대리바트, 한샘, 에넥스 등 31개 가구업체에 과징금 931억원을 부과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24개 건설사가 발주한 738개 입찰에서 낙찰예정가를 정하고 투찰가격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짬짜미’를 하다가 들킨 것이다. 가구업체들의 담합으로 건설사도 피해를 봤을 수 있다. 하지만 담합에 따른 가격 상승분이 아파트 분양 원가에 반영됐을 터이니 더 큰 피해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아파트 당첨자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가구업체들의 담합으로 32평 기준 가구당 25만원 정도의 피해를 봤다고 한다.소비자와 구매자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지 다 안다. 그렇다고 비겁하게 숨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담합을 해서는 안 된다. 담합은 경쟁을 차단해 소비자, 기업 그리고 국가 모두에 손해를 끼친다. 그래서 담합을 시장경제의 제1 적 또는 암적인 존재라고 한다. 담합은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담합 가담자들의 배만 채우는 가장 나쁘고도 뻔뻔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다.담합의 폐해는 이렇다. 경쟁 압력의 부재로 중간 구매자와 최종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올라간다.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며 선택권도 줄어든다. 건전한 생산활동보다 담합을 결성·유지하려는 비생산 활동에 자원을 낭비하게 되며, 기술 개발과 품질 개선 노력도 게을리하게 된다. 기술 진보를 위한 경쟁 유인 감소로 기술 혁신이 저해되고 시장 작동 기능이 왜곡돼 자원 배분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성장 없는 물가 상승, 한계기업의 시장 퇴출 지연을 통한 구조조정 저해
아워홈이라는 회사가 있다. 40년간 단체급식을 업으로 해온 회사다. 매출 2조원, 임직원이 1만여 명에 달한다. 지금 이 회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자립할지, 아니면 다른 곳에 팔지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중차대한 결정권을 쥔 사람은 회사 경험이 전무한 ‘전업주부’다.시작은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됐다. 지분 39%를 가진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과 20%를 보유한 막내 여동생 구지은 부회장이 다투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지분 20%를 가진 장녀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바로 그 주부 말이다. 3년 전엔 이 장녀의 지지 덕에 여동생인 구 부회장이 경영권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구 부회장이 신사업에 투자한다며 배당을 줄이자, 장녀는 회사를 매각하려는 오빠 편으로 돌아섰다. 그 장녀는 내친김에 사내이사로 참여했고, 여동생은 이사회에서 내쫓길 처지다. 주부와 아빠친구가 정한다?장녀의 결정은 주주로서 고유한 권리 행사다. 하지만 직원 가족과 협력업체를 합치면 수만 명의 생계가 걸린 회사의 운명을 경영 수업을 받아본 적 없고, 경험도 없는 이가 결정하는 상황을 임직원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한미약품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때 신약 수출 신화를 쓴 굴지의 제약사다. 51년간 갖은 풍파를 겪으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창업자가 작고하자 기업의 앞날을 두고 딸과 아들들이 맞붙었다. 다른 회사와 통합하느냐, 아니면 사실상 사모펀드에 매각하느냐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정작 승부의 향방을 결정지은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아빠 친구’다. 작고한 창업자의 절친이자 2대주주인 한 금형업체 오너가 아들들을 지지하면서 딸이 추진하던 통합작업은 무산됐다.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역대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 결과는 충격적이다. 당장 정부와 여당의 국정 운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연금 개혁과 같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구조개혁은커녕 통상적인 정책 집행마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볼모가 될까 걱정이 앞선다.19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는 민주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인 다수결 투표(majority voting)에 관한 이론이다. 이 정리의 내용도 충격적이다. 요약하면, 유권자의 합리적 선호를 반영하면서 언제나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다수결 투표 방식은 없다는 것이다. 실증하기 어려운 이론이지만 논지의 핵심은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비효율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선택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국가 경제의 자원 배분을 담당하는 두 가지 주체는 시장과 정부다. 완전경쟁 상태의 시장이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 경제학의 기본 명제다.물론 현실은 완전경쟁과 거리가 있기에 시장실패가 발생하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보이는 손’(visible hand)도 필요하다. 하지만 보이는 손에 의한 자원 배분에는 정부실패라는 위험이 따른다.올해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를 차지하는 60여 개국에서 국가 권력 지형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선거를 치렀거나 예정돼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실패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증폭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애로 교수의 통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