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구 제조업체인 마이크로코리아의 운명을 가른 날은 지난해
2월1일.

신한은행에 돌아온 어음 11억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후에 벌어지는 부도탈출기는 "드라마"에 버금간다.

줄거리는 이렇다.

조청길(58) 사장은 부도 다음날 부랴부랴 법원을 찾아 회사정리 및
재산보전처분을 신청한다.

주식포기각서도 함께 냈다.

구사주의 보유주식을 전부 소각, 경영권을 포기해야만 회사정래개시
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 회사의 부채는 연평균 매출액의 3배를 훨씬 초과하는
1천7백억여원이었다.

악성 개인사채도 5백50억원이나 돼 회생의 발목을 잡을 악재였다.

그만큼 회사정리 신청은 기각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법원은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세계에서 2번째로 탱크펜을 개발한 마이크로의 기술력을 인정한다며
재산보전처분을 내린 것이다.

조사장의 위치는 기술고문으로 바뀌었다.

회사로서도 핵심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구사주의 도움이 절실했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몇개월 후 이회사는 다시 회사재건의 해법을 바꾼다.

지난해 10월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화의신청을 낸 것이다.

경영권을 헌납한 상황에서는 백의종군한 열매가 조사장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회사정리를 신청할 당시 화의라는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던 조사장은
대기업들이 잇따라 화의를 신청하자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처럼 정상적으로 회사정리절차를 밟던 기업들조차 회사정리를
기피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지법에 접수된 회사정리와 화의신청은 각각 39건과 56건.

상반기까지는 회사정리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하반기부터는 상황이
역전됐다.

"화의는 일정기간 채무변제의 유예를 통해 파산을 방지하는 소극적
의미의 기업회생책인 반면 회사정리는 원금일부 탕감과 낮은 이자율의
적용, 추가자금지원을 통해 기업을 되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재건책이다"
(대법원 사법정책실 임시규 판사)

기업규모나 채무액수의 많고 적음, 혹은 채권자의 숫자로 어떤 제도가
더 적합한가를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쉽게 얘기하면 파탄에 직면한 회사측이 채권단과 합의해서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채무상환조건이 채무자에게 훨씬 불리한 화의에만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회사정리절차의 요건이 엄격한데다 채무자의 주식을 전량
소각하고 경영권을 박탈하도록 한 제도적 원인도 적지않다"(조대연
변호사)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결과 기업은 "단군이 돌아와도 되살릴 수 없는 상태"에서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도 재경원은 기업이 화의에만 몰리자 방만한 경영에 따른
화의신청은 과감히 기각하는 내용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법조계는 이 경우 법정관리제도 자체의 존속가치가 의문시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영업이나 기술,기업내부사정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회사정상화에
대한 열의가 높은 구사주의 활용가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동수
산업연구원 연구원)는 배경에서다.

기존경영진의 노하우를 적극 흡수하되 철저한 사후관리를 통해 추후
발생한 기업이익을 채권단에게 돌려주는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출자전환이나 전환사채의 발행도 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사후관리다.

자금집행내역에 대한 수시 감사와 관리인의 경영능력에 대한 철저한
감독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법정관리의 문턱을 높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 특별취재팀 = 남궁덕 김문권 이심기 김인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