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약은 불편하다.

보통 하루 세번씩 때를 맞춰 복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약물이 필요한 부위에 모두 전달되지도 않는다.

부작용도 심심찮게 일으킨다.

주사도 마찬가지다.

맞을땐 아프기까지 하다.

대안은 하나.

한번 처치해두면 오랜시간 잊어버리고 있어도 알맞은 분량의 약물을 필요한
부위에만 전달해 주는 새로운 제형을 개발하는 일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걸프전의 "크루즈미사일"에 빗대어 말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과학연구센터 정서영(42)박사는 최근 2년여간
씨름해온 숙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KIST-2000연구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해온 약물전달시스템개발연구의
중간과제를 마무리지은 것.

이 약물전달시스템은 삼투압을 이용한 것이 특징.

1미크론m 크기의 방을 골고루 분포시킨 뒤 이 방안에 항생제를 넣은
에멀전(혼합물의 한 형태)을 수술용봉합사 재질로 만든 고분자막에 깔았다.

두께는 70미크론m 정도.

항생제 침투율이 낮은 뼈 골수조직 등 감염부위에 수술을 통해 이를
넣어두면 삼투압에 의해 체내의 수분이 침투, 바깥쪽의 약물부터 방출된다.

방출되는 약물의 양은 항상 일정하며 지속시간은 3개월정도.

약물방출시간은 고분자막의 설계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할수 있다.

"에멀전기술이나 고분자막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지만 이를 합쳐 약물전달
수단으로 응용한 예는 처음입니다. 과기연의 고분자기술과 이 연구에 처음
부터 참여한 의료계의 수요를 연계해 최적의 제형을 찾아낸 것이지요.
이번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선택적 항암제, 유전자투여법 등에 응용할수
있는 제형을 개발해 낼 겁니다"

그는 뛰어난 연구성과가 나오려면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협력연구하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의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않는한 정말 새로운 것은 있을수 없으며 현재
로선 서로다른 영역의 융합과 응용을 통한 기존기술의 "고도화"만이 최선의
길이라는 말이다.

그는 또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본지식이 쌓인 다음에야 돈이 되는 응용연구가 성공할수 있는데 지금의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더 큰 돈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
이다.

정책당국은 확고히 틀을 잡아주지 못한채 언제나 우왕좌왕이고 연구원은
그 틈바구니에서 창의력을 잃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본연의 연구활동과 더불어 모든 연구원들이 진정으로 창의성을
발휘할수 있는 분위기정착을 위해 "모난 돌"을 자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9일자).